100일을 갓 넘겼을 때와 100일도 안 남았을 때의 마음가짐
올해를 단 석 달 만 남기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365일로 나눠진 1년이란 시간의 후반부가 코 앞으로 훅 다가온 느낌이다. 르완다로 파견되어 적응에 정신없던 전반부의 100일과, 앞으로 남은 100 일을 대하는 데엔 또 다른 격세지감이 존재한다.
이제 1년 계약기간의 종료가 얼마 안 남다는 실제와 내년 연장이란 불투명함이 공존하는 시기다. 월드미션 NGO의 필요와 나의 의지가 결합하면 한 해 더 이어서 이곳에 남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라도 성립되지 않으면 올해로 마감해야 한다.
보람되고 값진 시간이 아닐 수 없지만, 가족을 떠나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여정임을 절감하고 있다. 의지와 가치만으로 밀어붙이기엔 나란 존재가 실로 연약한 자임을 고백하게 된다. 물론 아내 혼자 서울에 남아 아이를 케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고 소소한 즐거움과 음식을 맛보며 살갑게 사는 가족의 일상이 소중하단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키갈리에서 사역을 하든 서울로 돌아가든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택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을 떠나기 싫어하는 딸의 마음이 열리면 이곳에서의 삶이 내년에도 이어져서 활동의 폭과 사람과의 관계도 더 넓고 깊게 풍성해질 수 있을 텐데……
키갈리의 지리와 언어 풍습이 익숙해져서 더 의미 있고 보람되게 봉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의 계획을 내려놓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과 계획이 이뤄지며 그 안에서 순종하며 감사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이런 내려놓음의 끝이라 모든 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절박함이 몰려왔다.
고1로 들어온 신입생을 가르칠 마지막 학기이고, 고2가 된 학생들의 이름을 기필코 기억해야 할 시점이며, 고 3인 친구들을 한 번이라도 더 봐야 하는 후반부다.
이번엔 고3미디어전공 아이들의 수업이 없는데, 이는 르완다 수능 시험이 어떻게 출제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학생들에게 카메라와 캠코더를 사용하는 실 제작을 가르치지만 시험은 이론을 기술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다소 생경하다.
주말이면 아직 가보지 못한 시내 곳곳을 다녀보려고 애쓴다.
이제라도 나서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곳에 와서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겠냐는 마음이다.
수업이 없는 날과 시험기간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융해내셔널 파크와 키부 호수도 방문할 계획이다.
해외에 나갈 수 있는 휴가도 아직 사용하지 못했다.
11월까지는 소진해야 하니 시간을 내어 우간다에도 다녀올 예정이다. 버스로 르완다 국경을 넘어 8시간이면 도착하는 우간다의 빅토리아호수 해변을 둘러보고 캄팔라의 대형 쇼핑몰과 서점에 들러 책도 구입하고 싶어 졌다. 걸어서 이웃나라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당연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을 아들에게 선물해 줄 예정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대중교통으로 탄자니아 국경을 넘어 세렝게티에 계시는 선교사님의 사역지를 방문하면 좋겠다. 가는 길에 광활한 초원을 뛰노는 누우 떼와 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와 사자 무리를 만나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1년간 구독이 가능한 e-book을 다시금 부지런히 활용하려고 한다.
자유롭게 다운로드하여 읽을 수 있으면서도 게을러서 읽지 못했던 책들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저녁이 되면 갑자기 정전이 되어 사방이 암흑으로 변하곤 한다. 미리미리 핸드폰과 노트북을 충전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놓아둔 자리를 더듬어서 양초와 랜턴을 켠다.
아프리카에선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 사려고 마음먹었던 물건이 내일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언제 채워질지 알 수도 없다.
다음에 한번 밥 먹자는 말보다는 지금 바로 전화해서 약속하는 것이 바르고 정직한 태도다.
주어진 시간, 유한한 제약 속에서 살아가기에 그 가치와 귀함을 체감하는 것 같다.
마냥 젊게 무한한 시간을 산다면 하루와 순간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애틋하게 그리운 아내와 딸을 이제 100일 정도면 볼 수 있다니 마음에 평안과 여유가 찾아온다.
시간은 지나고, 흘러간 것은 돌아올 수 없으니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내일을 알 수 없으니 현재만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순간이다.
표지사진 : 르완다 월드미션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