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여행지를 오사카로 정할까 도쿄로 갈까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엔 한 곳으로 좁혀야만 했다.
아내와 나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교토와 오사카에 끌렸지만 자녀들은 모던한 세련미와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도쿄를 선호했다. 가족이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인 만큼 자녀들의 기분에 맞춰주느라 어쩔 수 없이 목적지는 도쿄로 기울었다. 회사 눈치 보면서 4일의 휴가를 얻는 것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더 어려운 지경이다. 아무튼 비행 편과 숙소는 내가 알아보기로 해서 두 곳의 항공권 예약 사이트를 동시에 오가며 비행 편과 숙소를 알아봤다. 여행을 알차게 보내려면 출발과 도착시간이 중요하고 항공권 가격도 적당해야 하니 이런저런 상황을 살피면서 비행스케줄을 확정했다.
여행날이 다가오는데 네 자리를 확보하는 것도 일이어서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조심스레 영문명 성과 이름 패스포트 번호 등을 기입해 나갔다. 짜잔 드디어 예약과 발권에 성공해서 프린트 출력을 해보니 허걱.
도쿄로 생각하며 인천 도쿄 간 비행 편을 예매한다는 게 인천 오사카행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 곳의 항공권 예약 사이트를 오가는 사이에 목적지가 어느 순간 오사카로 변경되어 있었고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결제를 진행한 것이다. 비행편도 이용해 본 적이 없는 일본의 피치항공이었다.
피치는 중저가 항공이며 취소가 안 되는 조건이어서 등꼴이 오싹하니 식은땀이 났다. 저녁 무렵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나의 실수를 이실직고하니 오히려 아이들아 잘 이해해 주었고 아내는 나의 실수를 내심 반기는 분위기였다.
“아빠도 이렇게 깜빡할 때가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여행에 임하도록 하자”
함께 즐기는 여행이 되기를 당부하며 우리는 긴장과 희망에 들뜬 여운을 갖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간사이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를 오가는 열차에서 바라본 도심은 너무나 낯익은 풍경이었다. 짱구의 만화에서 등장하는 동네의 모습이었고, 나지막한 연립과 주택들이 반듯하게 선 곳엔 예쁘고 자그마한 차들의 모습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봤던 익숙함 그대로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제법 일본어를 구사하며 음식과 물건을 샀다.
혼마치의 숙소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우메다 중심부의 퇴근 시간대에는 드 넓은 지하 공간의 사방팔방에서 직장인들이 몰려와 지하도를 매우며 오가는데 그 일사불란한 사람의 물결이 장관이었다.
우리나라의 러시아워 그 이상의 거대한 군집이라고 해야 할까.
밤에 본 도톤보리의 불야성은 한마디로 열정적인 뜨거움이었다. 도로를 메운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중국인이며 동양인과 서양인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자그마한 수로를 통해 유람선이 오가는 모습도 색 다르지만 벽면을 가득 채운 네온사인 광고판이 현란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거리 음식과 라멘을 먹으며 들뜬 한밤의 시간을 보냈다. 오사카는 수도였던 교토의 주변부에 위치한 바다를 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관서 지방의 두 축으로 성장한 도시였다. 지진에도 비교적 안전한 오사카는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젊은이들은 물론 나이 들어서도 일하는 노령 인구들이 눈에 띄게 많아 보였다. 깨끗하고 아기자기하며 검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첫날을 제외하곤 계속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려서 유니버셜은 가지 않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어린 딸은 유니버셜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아들과 엄마 아빠는 도심 구석구석을 돌아보길 더 원했던 터였다.
오사카성을 보러 가는 길에 마주친 오사카 NHK건물과 오사카경찰본부의 건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방송사는 높은 빌딩의 웅장 함이라면 경찰본부는 예술적 조형미를 풍겼다.
오사카성 주변엔 넓고 깊은 수로를 둘러서 외부의 접근을 막았다. 공원으로 잘 조성한 길을 따라 천수각으로 향했는데 거대한 돌들을 쌓아 성을 높이고 담을 두른 모습이 절대권력의 힘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천수각은 9층 맨 윗부분이 전망대이고 각 층을 오를 때마다 다양한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최고의 권자에까지 오른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비상함과 그 힘과 권력을 확장하며 조선과 중국까지 정복하겠다는 야심의 중심부를 둘러보았다. 후에 오사카성을 지키려는 히데요시 가문과 빼앗으려는 도쿠가와의 쟁탈전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재건한 성을 바라보니 당대에 막강했던 권력의 쟁쟁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하늘 길로야 한 시간이지만 함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치러 가기 위해서 준비하고 거둬들여야 했던 곡식과 군비와 병력과 물자를 다 어떻게 조달한 것인지?
시대의 혼란과 전란으로 죽어나가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일 텐데……
천수각에서 나오는 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상을 세워놓은 신사에 들어갔다. 오래된 신사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절에선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소원하는 의식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태평성대를 살았던 백성들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민초들은 전란과 정치적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며 무수히 빌었을 것이다. 안정과 평화를 내려달라고......
백성들은 범접할 수 없었을 오사카성 주변을 거닐면서
한껏 다가온 봄기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