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건너면 개성
자유로의 끝자락엔 오두산 통일 전망대가 우뚝 서있다.
출판단지에 일이 있거나 임진각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눈에 띄는 건물인데 그동안은 통 올라가 볼 생각을 못했다. 그러던 차에 한번 둘러볼 기회가 생겼는데 전망대 안의 전시물과 야외에서 바라본 전경이 인상 깊었다. 평지를 운전하면서 철조망 너머의 강 건너가 북한이라고 인지하는 것과, 높은 곳에 올라 북녘의 들판을 직접 내려다보는 것의 체감은 질적으로 다른 체감인 것이다.
몇 주 전 외국인들과 함께 전망대에 오른 날은 일기가 안 좋아 주변을 확연히 분간하기 어려웠다. 안개로 자욱하게 흐려 있어서 전망대 왼편 방향이 김포고 강 건너 위쪽이 북한의 개성이라는 것 정도만 분별할 정도였다. 그런데 화창한 가을에 다시 오르니 시계가 확 트여서 개성 땅이 한눈에 굽어 보인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향하는 물줄기는 강폭이 1킬로 남짓이고 가까이는 500미터를 두고 남과 북을 가로지른다. 만조와 간조의 바다 영향을 받으면 물이 줄어 그냥 걸어서도 오갈 수 있는 지척 간의 가까움이다.
육안으로도 북녘의 너른 들판과 마을을 구분할 수 있는 선명한 날이다. 너른 농토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싶어서 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농사일을 하는 것 같은데 한편에는 장작불을 피워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사람이 있고 간간이 자동차의 움직임도 보인다. 소학교인 초등학교와 북한의 단층 가옥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날이 좋으면 이렇게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지척인데 정작 갈 수 없는 땅이라니’.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있을 수 없는 아이러니의 어처구니없음을 이젠 아무렇지 않게 덤덤히 받아들이는 현재가 이상스럽다.
전망대 내부에는 이산가족이 된 실향민들의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눈을 감아도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 지도와 살던 집의 모습을 그려 낸 손바닥 크기의 타일들이 벽면을 둘렀다.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기에 정성스레 위치를 기억하고 마을과 집의 형태를 그림에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 행여 마을이 변해서 못 알아볼까 싶어 땅의 지형과 특징을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형제자매 부모의 사진을 전시한 이도 있으니 얼마나 사무치게 그립고 애절할 것인가. 비행기만 타면 지구촌의 구석구석까지 못 가는 곳이 없는 부유한 시절을 살면서도 지척에 있는 땅을 밟을 수 없다는 코미디 같은 현실을 뒤로하고 전망대를 나왔다.
파주에 온 김에 아웃렛에서 점심과 쇼핑을 겸하기로 했다. 연휴의 연속이라 공간은 넉넉했다.
말로만 듣던 쇼핑몰을 거닐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내뱉는다.
“연휴에 사람들이 적으니 미국의 아웃렛을 거니는 것 같아!”
이 근처에만 들러도 막히던 길이었던 지라 공감하며 여유롭게 건물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스포츠 매장에 들러 신발을 살 예정이 아니었더라면 각 점포들의 멋진 장식에 눈을 떼지 못하고 구경만 하게 생겼다. 나와 딸이 신발 한 켤레씩을 고르느라 여기저기 살피는 동안 아내는 매장 밖 벤치에 앉아 조용히 쉬고 있었다. 이색적인 아웃렛 거리를 거닐며 매장 하나씩을 꼼꼼히 살펴보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웃렛이라 시중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운동화 하나씩을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뻥 뚫린 자유로에서 외곽순환도로의 잘 닦여긴 길을 질주하다가 문득 의구심이 생겼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목탄차가 굴러다닐까?”
2005년쯤엔가 금강산관광지 일대의 평야에서 흰 연기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사륜차를 본 적이 있다. 그곳의 농촌 풍경은 1980년대의 세트장 느낌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더 예스러운 1960년대의 과거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분위기였다. 그런 풍경을 배경으로 연기를 내뱉는 미상의 차량이 다가오는 데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장작을 태워서 차를 움직이는 목탄차량 트럭을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두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연료가 이렇게 부족하다니'......
지금은 형편이 좀 나아졌을까?
여전히 그렇지 못함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수해와 자연재해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그곳에 온전한 회복이 임하기를.....
그 온전함은 우리를 더욱 큰 온전함으로 이끌 텐데.....
한산한 거리를 막힘 없이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