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나날의 연속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에 머리가 익을 것만 같았다.
파란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모래사장의 열기에 숨이 막혀 한 발을 내디딜 수가 없다.
더위를 피해 바다로 들어가느니 몸을 움직여 나무그늘 아래로 피신하는 것이 건강에 이로울 상황이다. 더구나 불안정한 대기로 인해 언제 쏟아져 내릴지 모르는 질긴 장마가 습기를 머금어 불쾌감을 높였다. 언제부터인가 에어컨의 냉방 없이는 버티기 힘든 여름을 맞고 있다. 전기료를 생각하면 가정에선 길게 켜 놓을 수 없지만 열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몸이 버텨 내질 못할 것만 같다. 밤에 잠을 청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켜둔다. 자는 동안엔 가동을 멈추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며 버텨보지만 이내 침대에서 내려와 마룻바닥에 몸을 눕힌다.
대체로 휴가가 겹치는 7월 말 8월 초의 기간에는 어디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먹고 나선 주변 식당에도 자그마한 푯말이 붙어 있다. “여름휴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더워서 한 끼를 밖에서 해결하려는데 이마저 생각대로 되는 게 없다. 모두가 휴가지로 향하는 때이니 성수기엔 서비스다운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고 발 빠르게 숙소를 예약해 놓은 것도 아니니 조용한 산촌으로 길을 떠났다. 산 아래에 위치하지만 한낮의 더위를 피해 갈 수 없으니, 거실 천장에 달린 에어컨에 몸을 맡긴다. 냇가에는 장마철에 불어난 수량으로 물살이 제법 세차게 흐르는데 차갑기까지 하다. 자연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어느새 돌을 모아 둑을 쌓으며 물과 함께 노닌다. 방학이지만 학원의 뺑뺑이에 자유롭지 못하고 핸드폰만 손에 쥐고 살았는데 시원스레 흐르는 냇가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운 모양이다. 냇가에 발을 담그고 쉬는 사이 아이들은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앉았다.
땡볕의 맹위가 사라질 무렵 밭으로 나가 수확할 작물이 있는지 확인한다.
상추는 끝물이고, 우람하게 자란 오이와 가지를 따내고 빨간 방울토마토 몇 알을 입에 넣고 씹었다. 터져 나오는 과즙이 입안에 번져서 향그롭게 목을 축인다. 실하게 자라난 이웃의 옥수수를 딸까 말까 망설이다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해서 더 영글게 놔눴다. 사온 수박이 냉장고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휴가로 쉬게 된 아내는 조카들까지 챙겨서 데려온 바람에 밥과 간식을 해대느라 정신이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멍 때리면서 낮잠도 자고 좋은 음식 먹으면 좋으련만 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산이 품은 숲의 공기로 심호흡하고 책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어쩌면 콘크리트 벽 사이로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도심과 아파트를 떠났다는 것 자체가 휴가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입추를 맞았으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서 다시 살 만한 날씨가 찾아오겠지.’
겨울 추위엔 옷이라도 더 껴입으면 된다지만 여름 더위엔 정신까지 몽롱한 게 점점 버텨내는 게 쉽지 않다.
기후위기를 맞는다는 것 역시 그 타격은 약자에게 먼저 더해지고 있음을 절감하는 한여름이다.
무탈하게 넘겨서 가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