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J 씨의 연휴 나기
일요일이 어린이날이었던 탓에 월요일까지 연휴가 되었다.
어린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J는 빨간 날들의 연속을 기념하기 위해 토요일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J 부부만의 여행이라면 새벽 5시에라도 일어나 6시 전에 출발하는 게 가능하지만 자녀를 하나라도 데리고 나서려는 상황인지라 달래고 깨워 준비시키는 데만 1시간을 더 소모해야 했다.
어릴 때야 부모가 나서면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게 아이였는데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된 자녀들은 만만치 않다. 개인의 일정을 물어봐야 하고 학원 시간도 배려하다 보면 같이 움직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오늘은 둘째가 순순히 따라나선다고 해서 그의 비유를 맞추며 천천히라도 일어나 준비하는 모습을 애써 태연한 듯 지켜본다.
7시가 조금 넘게 집을 나와 차를 몰려고 보니 나무 아래 세워 둔 차량 위에 꽃가루와 황사로 뒤덮여 있었다. 유리창까지 끈적해서 급히 세차장에 들려 차를 닦아내고 주유를 마쳐서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8시다. 양양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춘천방향으로 올라 타니 벌써 막히기 시작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연휴의 시작이니 동해안으로 사람들이 몰릴 것은 당연한 이치라 각오를 했지만 더딘 운행에 J의 아랫배가 살살 조여오기 시작한다. 내비게이션에선 애초에 3시간 정도면 속초에 당도할 거라 예측했는데 그 예정시간에 2시간을 더한 끝에야 가족들은 바다와 마주할 수 있었다.
바다
그 광대하게 파란 물결이 넘실대는 사람을 숨 쉬고 꿈꾸게 하는 그곳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모래사장 위로 솟은 소나무 그늘에 기대어 아내와 딸과 J는 한동안 조용히 대양을 응시한다.
모래알의 감촉을 느끼며 철퍽 주저앉아 손과 발로 바닷물의 차가운 시림과 대지의 부드러움을 느꼈다.
J는 아이가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의 표정을 떠올렸다. 환희에 넘쳐서 벅찬 표정을 지었던 그 순간, 바다에서 미역국 냄새가 난다던 그 꼬마 아이가 이젠 소녀가 되었다. 아빠와의 허그도 조심스러워진 숙녀로 변했다.
약간 냉랭한 긴장감이 감도는 부녀 사이가 어느덧 바다가 뿜어내는 강력한 대자연의 기운 앞에선 저절로 무장해제되기 시작했다. 아이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건 이미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 것 인지도 모른다. 차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블루투스로 연결해 스피커를 통해 크게 들으면서부터, 차에서 과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며 주절거릴 때부터.
날 선 중학생의 차가움이 사라지고 예전의 상냥한 성품이 되살아나는 듯한 모래사장에서의 시간이다.
물회를 곁들인 바다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바닷가 그늘에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숙소를 정한 것도 아니어서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차를 몰고 멈춰서 쉬었다. 마침 해변 콘도에는 해수탕도 있어서 한두 시간 몸을 풀고 가기로 한다. 씻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준비된 목욕용품은 없었지만 아쉬운 데로 세면도구들을 마련해서 탕으로 들어갔다. 아들까지 함께 했으면 남자 둘 여자 둘 딱 사이좋게 서로의 몸도 씻겨주고 좋았겠지만, 그래도 홀로 탕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여간 즐겁고 행복한 휴식이 아닐 수 없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바다 내움 가득한 물회를 포장해서 서울로 발길을 돌린다.
귀경길의 도로는 한산하다 못해 뻥 뚫려 있어서 차를 크루즈 운행에 맡겨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애초에 숙소를 잡아 길게 여행하지 않은 것은 이제는 홀로 남으신 처가 부모님이 밟히기 때문이다.
J와는 10킬로 남짓 떨어진 동네에 사셔서 주말에나 찾아뵐 수 있고, 5월의 긴 연휴에 콧바람이라도 쐬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만족시킬 수가 없어서 조용히 다녀온 나들이였다. 대신 어버이날의 시끌벅적한 바깥의 외식보다는 동해안에서 이것저것 장 봐온 음식으로 저녁 상을 차려 장모님을 모셨다.
연휴의 마지막 날은 월요일이며 빨간 날이지만 문을 연 종합병원을 찾았다.
J는 거동이 불편해지는 장모님의 진료를 돕기 위해 아내와 출동해서 오전과 오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중이다. 신도시에 위치한 병원은 호텔 로비 이상으로 넉넉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데 평생 모아둔 돈을 아낌없이 쓰고 가라는 과잉 친절을 베푸는 듯했다. 다행히 긴 대기시간 없이 진료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모셔드리고 귀가하니 저녁때다.
연휴였는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챙기고 나니 빨간 날들이 사라졌다.
자녀들을 챙기고 부모님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50대 J부부의 연휴는 그렇게 저무는 중이었다.
'막중하지만 불안한 50대의 노동이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막연하지만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감당해야 할 무게의 가속을
잘 소화해 낼 수 있기만을……
나란히 침대에 몸을 누이며, 그래도 감사한 연휴의 마무리였노라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