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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남포동 중고 책방 뒷골목까지

2박 3일 부산여행

by 준구

가끔씩 부산 출장을 떠날 때가 있었지만 차분히 머물면서 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본 적은 없었다.

부산 시내에서 일을 보고 해운대를 거닐다 자갈치 시장을 둘러보는 게 고작이었지, 남포동 뒷골목을 돌아 보수동 책방을 뒤지다 국제시장에서 요깃거리를 즐기긴 처음이었다. 오래 머물러야 여유가 생기고 거닐면서 찬찬히 봐야 비로소 즐기게 된다. 서둘 필요가 없으니 지친다 싶을 때 산을 깎아 벼랑 끝 높다란 곳에 주택을 개조한 보수동 카페에서 숨을 고른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달달한 케이크가 들어가면 몸은 금세 충전이라도 된 듯 다시 활력이 솟는다. 카페에 오면 우리도 잘 모르는 음료와 간식을 당당히 주문하는 딸은 이젠 제법 커서 아내와 죽이 잘 맞는 친구 같다. 예쁘게 차려진 음료를 셀카로 담고 골목길에 대한 감상을 나누다 다시 길을 나선다. 구제골목을 돌며 마음에 드는 옷과 액세서리를 골라보는데, 여행에서는 아내의 인심이 후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이나 먹고 싶은 것에 되도록이면 비유를 맞춰준다. 연휴를 맞은 2박 3일간의 부산 나들이의 둘째 날에 용두산공원 주변을 훑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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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 골몰과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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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가파른 길 용두산공원

아침 일찍 숙소인 해운대부근 호텔에서 나와 부산 지하철을 타고 자갈치시장역으로 이동했는데, 지하철의 노선도 대여섯 개나 되고 좌석배열도서울과 달라서 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열차가 도착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음은 뱃고동소리와 갈매기가 우는 바닷가 배경음을 섞은 소리여서 생경하면서도 정겨웠다. 지하철의 좌석은 비교적 널널해서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 편하게 이동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경상도 부산의 높고 낯선 억양에서 타지에 나와 있음을 실감한다. 노곤함이 몰려와 살짝 졸음에 빠져드는 기분이 오히려 편안한 여유를 주었다.


서울에서 차를 몰아 부산으로 향한 1월 27일 새벽엔 그야말로 긴장감이 한층 고조된 상황이었다. 아고다를 통해서 해운대 주변에 바다전망에 욕조가 달린 가족형 숙소를 잡기는 했는데 하루 전날부터 전국을 강타하는 대설 눈비 소식과 이로 인한 도로의 강설 미끄럼 경고 메시지가 밤새핸드폰에 울려 대기 시작했다. 숙소를 취소하기엔 이미 늦었고 열차표는 매진에 고속버스표도 한 두 자리만 뜨문뜨문 있고, 같은 시간대 차량의 빈자리는 없었다. 폭설에 길이 막히는 한이 있어도 자가용으로 움직이는 방법밖에는 없으니 새벽 6시엔 출발하겠다는 맘으로 잠들었지만, 막상 4시경에 눈이 떠졌다. 운전자만 졸리지 않는다면 새벽 5시에 떠난 들 상관없으니 딸을 깨워 서둘러 집을 나섰다. 명절을 맞아도 설을 쇠러 지방으로 다녀본 적이 없는 민족의 대이동에 동참해 본 경험이 없는 서울 토박이라 귀성의 어려움을 모르는 무모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불안과 걱정이 엄습해 왔다. 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자와 눈비에 속도를 줄이라는 경고 문구들을 확인하면서 부지런히 고속도로에 올랐다. 천만다행으로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고 눈 내리는 구간에는 제설차량이 뿌리는 염화칼슘과 비로 바뀐 눈으로 인해 점심 전에 해운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산 시내로 진입하는 수영강변도로에 접어드니 일본 시내의 도로와 고가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길을 만나고, 주변으로 높다랗게 솟아오른 아파트 숲은 홍콩 시내의 분위기를 풍겼다. 광안리와 해운대의 고층 밀집 아파트들로 인해 스카이 라인이 바뀐 것은 알았지만 그 사이를 거닐며 위를 올려다보는 높이의 아찔함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콘도가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때를 기억하던 해운대는 엘시티가 들어서 해안의 풍광을 새롭게 바꿔 놓았다.

첫째 날 낮에 해운대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딸은 철썩거리며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가 좋다고 했다.

겨울바다의 바람은 세차고 매서웠지만 정신을 청명하고 맑게 만들었다. 저녁이 되어 사방이 어두워졌을 땐 해변과 먹거리골목 사이를 장식한 불빛 축제로 사람들이 들썩였다. 수많은 동남아와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IMG_4995.HEIC 해운대 바닷가와 엘시티건물
IMG_5011.HEIC 해운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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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빛축제

부산에 왔으니 먹거리는 지역의 대표 음식을 하나씩 맛보기로 했다. 첫날 점심은 해운대 주변의 초밥집을 찾아서 점심 정식을 맛봤는데 바다 분위기가 얹혀서 그런지 딸은 엄지 척을 표시했다. 저녁에는 낙곱새를 맛보고 다음날엔 자갈치시장에서 회정식을 시켜 먹었다. 해산물은 따로나오지 않아서 한 접시를 따로 시켜 바닷가에 온 기분을 냈다. 저녁으로는 숙소 주변에 줄을 서서 기어이 돼지국밥을 먹었는데 아내는 국물이 다르다며 감탄을 쏟아냈다. 난 사무실 주변에서 먹는 순대국밥과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곁들여 나온 깍두기와 김치맛이 일품인 것에는 동의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 몸이 노곤노곤해지는데 이때는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푹 담그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물을 좋아하는 딸이 여유롭게 탕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드라마 한 편을 감상하며

반신욕을 즐겼다. 침대에 늘어지게 몸을 누이고 아내와 도란도란 TV드라마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냈다.

예전엔 명절 상 차리고 손님 맞느라 더 분주했던 시간들이 변하고 새롭게 되어 이젠 문화가 바뀌었다. 물론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장모님만 생존해 계신 상황으로 변했다. 형제자매들도 일가를 이루었으니 나는 나이를 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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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곱새 해산물모듬
IMG_4994.HEIC 초밥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날은 29일 설날 당일이었다. 오전 9시쯤 해운대 숙소에서 나와 달맞이길을 따라 올라 산책로를 거닐었다. 소나무 숲길을 거닐며 해운대바다와 광안리 쪽 고층빌딩을 굽어 보았다. 바다 공기는 상쾌했고 하늘은 청명했다. 고개를 넘으니 송정해수욕장이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해변 풍경이다. 바닷물에 비친 건물과 하늘이 명징하게 맑았다. 새롭게 발견한 부산이라는 도시의 매력이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이젠 아쉬움 없이 서울을 향해 페달을 밟아야 할 시간.

부산으로 향할 때와는 달리 서울로 돌아갈 때는 귀경의 답답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10시간가량의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지루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3일간의 힐링이 주는 부산의 기운을 억누르진 못했다.

막히는 길도 즐거웠다.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이 컸고, 여행길에 함께하는 가족이 있어서 즐거웠다.


다음엔 더 천천히 여유롭게

최민식이 영화에서 외쳤던

“느그 서장 남천동 살지”에서 들었던 그 동네도 걸어보고 싶어졌다.


IMG_5071 4.heic 달맞이고개에서 본 해운대와 마린시티
IMG_5084 8.heic 송정해수욕장




표지 : 송정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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