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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May 24. 2020

세렝게티와 이웃한
레이크마냐라 국립공원

아프리카에서 사자 찾기

늘 사자를 찾아 헤매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다.

초원의 왕은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우리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눈을 부릅뜨고 다녔다. 

그렇다고, 나선 길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육로로 이동하면서 몇 번은 국립공원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 위의 벌판과 숲 사이에는 어김없이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들과 나무에 널브러진 원숭이들의 한가로운 모습은 일상적 풍경이었고 경계 어린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는 순한 동물들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영양의 무리가 있었고 조금 지나면 얼룩말의 집단들이 나타났다. 동물의 왕국에서 지프를 탄 인간의 무리는 소수였고 주인공은 대자연속의 동물들이었다. 한가로이 모여 있는 얼룩말의 겉 무늬가 너무도 또렷하게 아름다웠다.


검은색이 주를 이루며 흰색이 보조를 맞추는 것인지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수놓은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대등한 비율로 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늘씬한 다리와 힘줄과 근육이 눈에 띄게 멋졌다.      

물속에 몸을 숨기고 눈만 내놓고 있는 습지의 악어는 금방이라도 우리 쪽으로 다가올까 싶어 차량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 살짝 떨렸다. 연이은 늪지에선 등치가 산만한 하마들이 서로 몸을 기대어 지루한 낮의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하마 주위를 맴도는 무수한 하늘의 새떼들은 얼마나 우아한 날갯짓으로 우리를 맞이하던지......     


얼룩말 무리
휴식중인 하마
홍학의 군무

                                                                      

우간다, 르완다, 케냐의 국립공원은 일정상 그냥 스치듯 지나친 곳이 많았지만, 탄자니아에서는 마니아라 국립공원을 찬찬히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마니아라 호수의 풍부한 수량 덕에 야생의 동물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렝게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크기지만 이곳에도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늘 멀리서만 서 있던 기린이 우리가 이동하던 길가의 양편에 서 있었다. 우리가 탄 지프가 속력을 내어 달리자 깜짝 놀란 듯 같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6~8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기린이 속력을 내어 뛰는 모습에선 느린 듯 빠른 묘한 역동성이 느껴졌다.   

   

기린의 여유, 원숭이들의 휴식 


이번에는 덩치가 큰 코끼리가 나타났다. 나무에 몸을 비비며 대여섯 식구들이 함께 산책이라도 즐기는 모습이었다. 느릿하지만 우아한 코끼리의 걸음걸음이 양반들의 동작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이 보이는 곳엔, 인간의 차량이 더 긴 줄로 멈춰서 있다. 한 순간이라도 놓칠세라 이들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이 아닌 그들의 왕국에서 그 자유로운 삶 자체를 목격한다는 것은 크나큰 설렘과 감흥이 아닐 수 없다.  넋을 빼고 크게 숨을 들이켜서 눈과 가슴을 열고 바라보았다. 일시에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을 응시하며 사방에서 터지는 울음소리의 역동에 귀 기울였다.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자극되어 몽환적인 감흥에 휩싸였다. 바람마저 적당히 불어와 신선함이 폐부에 와 닿았다. 사방이 광활하게 트인 공간엔 하늘과 땅이 다아 있고 목마른 동물들은 호수가로 모여들었다. 눈과 귀가 황홀경에 이르자 후각과 미각으로 대자연을 호흡했다. 가슴 벅찬 감격이 몸의 미세한 감각을 깨워 머리털까지도 쭈뼛 서게 만든다. 카메라에 모든 광경을 담아 보려 하지만 포착할 수가 없다. 문장으로 표현하자니 나의 필력이 졸렬하다. 시공간에 펼쳐진 너무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완벽히 무장해제당해서 표현할 길이 없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신비와 경외를 정직하게 표현할 방법은 그저 짧은 감탄사였다.

와! 우아!

내가 발동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이 순간을 기억할 수밖에......     


코끼리들의 이동


마냐라 국립공원의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끝내 사자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수줍은 미어캣과 멧돼지와 누우가 느닷없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뿐이었다.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공원을 나올 무렵 우리는 강가로 모여드는 코끼리 때를 만났다. 코끼리 대여섯 마리를 마주했을 때은 우리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구경을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십여 마리가 나타나더니 연이어 코끼리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어 거대한 무리가 줄을 이어 이동을 시작했다. 코끼리 한 마리의 크리가 우리가 탄 지프보다 커 보였다. 운전을 맡은 현지인은 조용히 차량의 시동을 끄고 숨죽였다. 우리의 차와 앞 뒤의 차는 그냥 차 간의 거리를 벌린 채 멈춰 서야만 했다. 거대한 생명체들이 우리의 차량을 밀어버리거나 밟아버리지 않고 그 사이로 지나쳐 가기만을 바라야 했다.   

   

이 대자연의 주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이 숲의 생명체인 코끼와 각종 동물들에게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지극히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코끼리들은 인간의 차량 사이로 서로의 안전을 구가하며 천천히 지나갔다. 잠시나마 쫄깃해진 나의 심장은 새로운 느낌으로 코끼리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인간이 이 땅의 주인인양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했을 때, 세상은 천천히 몸살을 앓고 신음하며 눈물 흘려왔는지도 모른다. 지구가 온난화되고 이상 기온이 발생하며 잦은 천재지변이 찾아왔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의 창궐은 이미 인간을 향해 예고했었던 대자연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늘 사자를 찾으러 나서는 여행이었지만 그 길에서 용맹한 맹수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에 못지않게 밀림에서 서식하는 동물 하나하나가 귀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책무가 가장 막중하다는 깨우침에 이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BP8YNdAIyiU&t=116s    마냐라에서 촬영한 4분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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