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성당의 좁은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간 예배당의 드넓은 천장과 사방을 뒤덮은 명화에 압도된 때의 감동과 희열이 되살아났다.
아담의 창조 (미켈란젤로) by pixabay
루브르 박물관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던 끝에서 마주한 승리의 여신상에 매료된 때가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포스에 넋이 나갔었다. 역시나 많은 사람에 둘러싸인 모나리자의 미소가 감미롭고 매혹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도판 위에 그려진 커다란 그림이 주는 마력이 더욱 강렬했다.
한적한 미술관에선 순백의 대리석으로 조각한 남성의 근육질에 매혹되어 나도 모르게 손이 조각을 더듬고 있는 몰상식을 범하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 사람들의 놀란 눈과 황급히 다가오는 경비원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돌이라는 질감에 어떻게 저런 생명력과 볼륨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본능이 이성을 압도했던 정신 나간 순간이었다.
니케 (승리의 여신) by pixabay
오르세는 역을 활용한 공간의 구성뿐 아니라 이름이 익숙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로 풍성했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수 없이 많은 고흐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전시되어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반가웠다.
대영박물관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뜯어와 타국의 전리품을 버젓이 전시해 놓았지만, 그 아름다움만큼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매트로폴리탄 미술관도 타국의 예술품들로 장관이었다.
나는 그렇게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책을 사서 틈나면 다시 펼쳐보곤 했었다.
그런데 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보니 그간 내가 모았던 책들을 꿰뚫어 미술사 전체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했다. 세련된 종이의 질감 위에 칼라풀한 그림의 도판을 인쇄했고 큰 브로마이드로 뽑은 그림도 마음에 든다.
별이 흐르는 밤 (반 고흐) by pixabay
책의 서두 역시 강렬했다.
미술 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색깔 있는 흙으로 동굴 벽에 들소의 형태를 그리는 그런 사람들이 미술가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물감을 사서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그리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