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처럼 살아남기
오랜만에 그에게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간단한 인사에 덧붙여 “킹덤” 시즌 3은 언제쯤 볼 수 있는지 덧붙였다.
그의 답신엔 “킹덤”을 재밌게 보셨냐며 반가워하는 기색이 뚝뚝 흘러넘쳤다.
그가 속한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이라 더욱 눈여겨보았고, 홀리듯 시즌1과 시즌2를 몰아서
감상했다. 시즌 3에 합류할 전지현의 등장이 기대감을 증폭시켰는지 그의 안부와 함께
킹덤의 제작 근황을 물었던 것이다.
“선배님 코로나 때문에 제작이 멈췄어요. 현장 제작이 어려워서 저는 계속 사무실에서
내근하고 있어요. 상암동에 오시면 함 들리세요. “
그를 처음 만난 건 7~8년 전쯤이다. 내가 모 방송사의 외주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그는
그 방송사의 계약직 조연출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배당되어 6개월 정도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했다. 같이 일했다고는 하지만 일주일에 한차례 녹화하는 날과 종편 날, 두 번 정도 만나는 사이였다.
그는 미디어를 전공했고 방송 연출에 대한 열망이 컸다. 대학 때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도 가졌다. 틈틈이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의 공채를 준비하고 있었고, 어떤 때는 1, 2차를 거쳐 최종 관문에까지 들기도 했다. 그가 몸담았던 방송사에도 티오가 나면 응시할 마음이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지상파와 종편을 비롯한 모든 제작사가 정규 공채의 규모를 줄이자, 응시할 기회도 적어지는 추세였다.
어느 날인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녀가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았다.
사귀는 오빠가 지방에서 대학원을 다녀서 주말이면 자기가 내려와서 만나기를 바란다고.....
자신은 주말이면 피곤해서 쉬고 싶은 직장인인데, 오빠가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고......
오빠가 결혼해서 미국 유학을 같이 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단다.
나는 조연출의 이야기를 쭉 듣고 나서 순박한 그녀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젠 서로가 같은 입장이던 대학생 시절의 상황이 아니라고.
대학원생과 사회인은 서 있는 곳이 다르다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그 오빠의 집안이 부유한 것도 아니고, 설령 미국에 간다 해도 공부를 마치려면 아내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사랑해서 기꺼이 남편이 때로는 부인이 상대를 공부하도록 돕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엔 깨어지는 가정도 더러 보았노라는......
주말이면 시간을 아껴서 너의 미래와 꿈을 이루기 위한 공채 준비와 기타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너의 삶과 인생의 꿈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투자가 지금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나는 그녀가 그에게 종속되거나 편승되어 그녀의 주체성을 상실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당당하게 자기의 삶을 주도해가는 사람이기를 기대했다.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어느 날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방송사에선 공식적인 티오가 안 나서 그만두고 그녀는 강남의 교육미디어 회사의 직원으로 입사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만나서 점심과 커피 타임을 가졌다. 정규직으로 안정된 월급을 받고 있지만 방송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고 했다. 주말이면 언론사 공채시험 준비 스터디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 오빠와는 벌써 정리했노라고 덤덤한 미소를 보였다.
헤어지는 길에 나는 꼭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때가 4년 전쯤이었고, 불현듯 그녀가 떠올라서 다시 연락을 했을 때는
“킹덤” 제작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작품을 만드는 시기였다.
“선배님 밤새며 씬을 찍어야 하는데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치는 당당함이 실려 있었다. 강남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길 잘했단다.
목회를 하시던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라,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의 사회 초년생 시절의 그녀에게 나는 “꿈” 쪽에 방점을 찍어 이야기했었다.
나의 훈수가 아니었다면 누군가의 목회를 돕는 사모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자신의 선택이니까.
“킹덤” 시즌 3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완성도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한다.
어쨌든 나는 너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언젠가는 너의 이름으로 만들어질 작품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것을 네가 갖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