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는 일은 낭만적이지만, 비를 피할 곳이 없어 몸으로 받아내는 이들에게는 곤혹스러움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집이 없는 홈리스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연민을 몸으로 구제하는 중이었다. 음식을 모아서 가져다 먹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겨울이면 두툼한 외투와 장갑을 구해서 추위를 견디도록 도왔다.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직업을 알선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애썼다. 그런 사역을 감당하시는 분이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2008년 늦가을, 나는 가족과 함께 예일대학 캠퍼스 타운의 한 연구기관에 머물고 있었다.
일에 찌들어 쉼을 선택해서 날아간 미국이었다. 1년간 영상제작 일을 떠나, 쉬면서 종교문화 연구에 집중하고자 했다.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촬영 편집에 쫓겨 잠을 줄이던 압박감을 벗었고, 아카데미즘으로 충만한 사색의 시간을 누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미국이라는 넓은 땅에서도 한인 커뮤니티의 중심인 교회를 통하면 새로운 인물을 포착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의 시간과 재능을 빌려야 하는 미안함 때문에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그분의 활동을 들으니 나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려 감동이 되었다. 홈리스 사역을 널리 알려야 후원자들을 얻고 지원도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영상제작을 부탁한다는 요지였다. 비용이 없으니 자원봉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나는 잠시 멈짓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일은 잠시 멀리하기로 마음먹은 터였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고색창연한 예일대학의 건물 앞에 펼쳐진 그린은 넓고 푸른 잔디 광장이다.
확 트인 멋진 공원인데 이런 오픈 공간과 뉴헤이븐의 후미진 구석구석에는 홈리스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박스로 집을 꾸미기도 하고 텐트에서 장기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외모나 의복이 너무 멀쩡한 사람도 있었는데, 집이 외곽에 있고 도심에서 일을 얻어야 해서 집을 오가는 비용과 시간을 아끼느라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면 동사하는 노숙자도 생긴다고 했다. 순간 나는 충격에 빠졌다.
아프리카의 난민촌에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수없이 보며 취재했지만 얼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 부유한 나라에서, 집 없이 구걸로 연명하며 추위로 얼어 죽는 노숙자들이 이리 많다니’.......
국가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를 방문했다.
프라이버시와 초상권이 중시되는 나라에서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사역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하니 바로 우호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베드는 한 사람씩 잘 수 있는 시설이었지만, 특유의 역한 냄새가 배어 나왔다. 노숙자들 역시 이런 시설에 수용되기 싫어했는데, 술과 담배와 마약으로 쩔은 사람들을 서로가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고 규제당하는 것을 싫어했다. 시설에 들어가야 한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는데도 쉼터를 마뜩잖게 여기는 것이었다.
혼란과 충격이었다. 나라도 어찌 못하는 일을 유색인종인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십시일반 돈과 시간을 들여 소외된 이웃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그린 근처에 세워진 오래된 미국 교회를 빌려 홈리스들을 모아 예배하고 식사하며 교육시켰다. 촬영을 위해서 그들의 모임에 참여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집이 없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씻지를 못한다. 당연히 무지막지하게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그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쓰도록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대화하고 가까이 교제하며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여간한 마음으로도 쉽지 않은 사랑임을 발견한다.
며칠간 촬영하고 최소의 시간을 들여 빠르게 편집을 했다.
영상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세세한 자막과 디테일하게 다듬는 작업을 여러 번 거쳐야 했지만 그렇게까지는 시간을 내지 못했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에서 그 영상을 다시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자신의 돈과 시간과 열정을 들여 낮은 자를 섬기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나의 달란트를 사용해서 영상을 만들어 낸 것이 나를 나답게 만든 결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든 부유한 나라든 소외된 약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어려움에 아파하며 애통함으로
돌아보는 손길은 늘 필요한데, 코로나로 모두가 힘겨운 이때에 홈리스를 향한 정성이 줄지는 않았는지
불현듯 걱정이 인다.
‘그때 미처 손대지 못했던 자막을 이제라도 넣어주는 것이 마땅한 것은 아닐까’
나를 나답게,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