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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May 12. 2020

지리산에서의 1박 2일

왕시루봉 선교유적지 촬영

지리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기는 순간 사뭇 비장함이 몰려왔다. 

언제이건 꼭 오르고 싶었던 산을 이제야 두 발로 밟을 수 있게 되었다는 뭉클함에서였다.  

우리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최후의 보루가 되어, 오갈 데 없는 사람을 품어 주었던 포근한 골짝과 숲으로 어우러진 공간.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던 사람들과 ‘태백산맥’의 주인공들이 저기 어딘가와 물가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만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1000 미터 고지에 위치한 왕시루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르막의 연속이라 힘겨울 때마다 잠시 길에 머물며 숨을 골라야 했다. 정상에서 하루를 묵고 내려오는 일정이라 개인 짐에 촬영 장비가 더해져서 몸이 거추장스러웠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는 했지만 만만치 않은 중량은 피할 수 없었고, 다행이라면 산행 중에는 굳이 마스크로 입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600 미터 지점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진달래로 인해 여기저기 울긋불긋 함이 뿜어져 나왔다. 도심에서는 이미 지고 사라진 꽃이 이제 만개하고 있음이 조금은 생경했지만, 따스한 남도에 위치하지만 해발고도에 따라서 다른 계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다리가 기름진 몸을 버거워하며 나도 모르게 거칠어진 숨소리를 터트렸다. 게을렀던 도시 생활이 낱낱치 드러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겨우 능선에 다다라서야 눈앞에 첩첩 산들이 운해와 함께 펼쳐지고, 발아래론 섬진강이 휘감아 안은 구례의 마을이 그림처럼 드리워졌다.  노고단에서도 능선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면 그곳에 왕시루봉이 있다.


지리산 왕시루봉과 교회


지리산에는 속세를 등지고 세상을 떠나서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 많았고, 그중의 한 부류는 서양의 선교사들이었다. 풍토병과 역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어서 피해 들어오고, 지친 심신을 달래며 책과 서신을 정리하기에 이보다 적격인 장소도 없었다. 노고단과 왕시루봉 주위에는 수 백 년 전 그들이 자신의 고국을 그리워하며 간소하게 지었던  서양식 집과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노고단에서는 그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왕시루봉에는 출신 나라에 따라 다소 상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주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고 돌보지 않아 허물어지고 삭아내린 목재와 돌일망정 한때는 10여 가구가 생활했던 집들이 사방에 세워져 있었다.  오를 때의 여름 기온은 어디로 가고 밤이 되니 휘영청 달빛 아래 북풍한설의 매서운 바람이

사방을 휘감는다. 차디찬 시냇물에 몸을 씻는 것은 애당초 포기하고 겨우 양치만을 하고서 침낭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미군의 막사를 뜯어와 만들었다는 예배당에서 침낭만으로는 부족해서 화목난로에 불을 붙인 온기로 하룻밤을 청했다. 바람은 폭풍우가 휩쓸고 가는 기세로 창을 거칠게 두드렸다. 여린 나무들이 소리 내어 우는 것 같았다. 삐끗한 오른쪽 다리로 내일 무사히 하산에 성공할 것인지 암담해하면서 눈을 감는다. 잠시 내려다본 밤하늘의 별빛과 마을의 불빛이 보름을 밝힌 달을 반사된 섬진강의 줄기와 어울져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황홀함을 느끼며 의식이 희미해져만 갔다.     


다음날 한두 가지 촬영을 마치고 하산을 했다.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끼며 몸을 질질 끌고 겨우 구례로 내려왔다. 한 다리는 구부리지 못할 정도로 아팠지만 그래도 잘 내려온 것에 감사했다. 산에서 내려왔기에 이제는 다시 마스크로 입을 가리며 생활해야 하는 도심에서 살아야 한다.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안전한 한국에서 더 안전했던 산을 떠나 다시 서울로 향했다. 코로나의 철저한 방역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목숨을 잘 지켜낸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노후의 불안정함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미래의 불확실함으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하는 문제다.    

  

구례로 내려와 느지막이 점심을 하고 길이 막힐세라 고속도로를 사정없이 질주해서 상경했다. 

그러나, 비 오는 금요일 저녁 도심의 교통체증까지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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