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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Mar 04. 2021

너를 떠나보내며

조그만 희망이라도 전할 수만 있다면

너의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어. 

벼락같은 충격을 받아들이자니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 멍하니 넋을 잃었지.

전화로 소식을 전해 듣던 아내는 끝끝내 비명을 지르며 오열하기 시작했어.

믿을 수 없고, 상상하기 힘든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수용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러면서 우리의 친구인 너의 부모님이 생각났지. 우리가 이렇게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네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하겠니.

하늘이 무너지고 창자가 끊기는 애통함에 사로잡혔을 너의 부모님을 우리는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우리의 슬픔도 주체할 수 없었지만 너의 부모님을 홀로 남겨두면 안 될 것 같아 힘겨운 발걸음으로 너의 집으로 향했지.      


청천벽력과 같은 슬픔에 잠긴 너의 부모를 찾아가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어.

그 큰 애통함을 어찌 위로할 것이며, 우리도 통제가 안 되는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던 거야. 그냥 옆에 있어주고 눈물 흘릴 때 같이 울어주고 멈출 때 멈추며 아픔을 나누는 수밖에.

    

너의 엄마가 간밤에 꿈을 꾸었다고 했어. 네가 편안하고 환한 미소로 나타났었다고.

그게 불길했었는데, 그 아침에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거였고.

병원 영안실에 누인 너의 모습을 가족이 확인해야만 했고, 호흡이 없는 차가움을 직면하자

너의 아빠와 엄마는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셨어.

믿을 수 없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입시에 몰린 10대를 지났고, 대학에 진학했고, 군대에 다녀와서 자격증을 준비하며 보낸 시간이 네 삶의 대부분이었지. 성실하게 생활했고 술 담배도 안 하던 네가 게임을 즐기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라던 네 부모님의 말씀이 너무 쓰리고 아프게 다가오더라.

삶의 흔적이 온통 시험 준비에 몰두했었던 시간들이었다는 거야.     


무엇이 너를 깊은 좌절과 절망의 끝으로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청년의 죽음은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깊은 시름과 아픔인 것 같아.

수를 다하고 돌아가시는 부모님을 대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애통함을 자아내니까.

네가 스스로 고립되고 너의 세계에 갇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자책이 들더라.

너의 어린 날을 알고 중등부 시절엔 신앙을 지도했던 나였으니 말이야.

청년들의 좌절과 아픔을 보듬고 생명을 생명 되게 활기를 주는 것이 종교여야 하는데 말이야.

생명력을 잃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없는 종교는 스스로가 정통임을 자부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능력이 없는 집단일 뿐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너를 끝까지 기리고 떠나보내는 자리에 우리 교인들이 함께 했음은 기억해주렴.

어쨌든 너의 부재가 우리의 현재를 조명하는 것 같아서 더욱 아펐다.      


청년 주택이 들어서면 들고일어나는 어른들의 반대에 젊음이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른들도 자신의 자녀를 기르고 그들의 독립을 바라면서 말이야.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도 취업에 매진해서 직장을 얻도록 애써야 하고....

직업이라도 있어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텐데 집값은 터무니없이 높기만 하고....

운 좋게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어찌 나서 기르고 양육할지 엄두가 안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각박한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숨 막히는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을까?

기득권을 가진 사람과 재력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힘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연약한 자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것에는 그리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 말이야.

청년의 좌절이 깊어만 가는 것은 기존의 틀과 질서에 기성세대의 탐욕적 관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돌파구를 찾기가 힘들지도 모르겠구나.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인내하고 견디면 강의 앞 물결은 먼저 바다로 흘러들어 갈 거야.

그리하여 마침내 너희가 역사의 물결을 주도하는 물살이 된다면 그때는 멋지게 선배들이 감히 이루지 못했던 격조 있는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 가는 거야.

     

능력껏 일해서 많은 재화를 얻는다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제하고 나머지는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성숙함이 있는 사회.

적은 임금을 받는다 해도 성실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사람이 귀해서 누구나 인간답게 일하는 일터를 갖는 사회.

이웃의 자녀가 나의 아이처럼 동일하게 귀한 존재로 인식되는 사회.

남녀노소와 소수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가 사람다운 가치를 구현하며 살아가도록 제도를 만들어가는 사회

서울로 강남으로 부와 학력과 권력이 블랙홀처럼 빨려 드는 것이 아닌,

나라 곳곳의 지역과 학교의 수준이 높고 고루 안락한 여유로움이 넘쳐나는 사회.

열차 타고 대동강에서 점심 먹고 개마고원을 거쳐 러시아의 벌판을 넘어 유럽으로 출장 다니고 휴가를 즐기는 사회.

지나친 경쟁으로 피로한 사회를 극복하고 더불어 함께 평안하게 삶을 영위하는 세상 말이야.     


그때까지는 청년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사회의 기존 질서에 기죽지 말고, 쫄지 말고, 위축되지 말고 웃으면서 가볍게 비웃어 주면서 미래를

준비하면 좋겠어.     

더 많은 나날을 살아갈 자들이 만들어 갈 세상은

이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품격 있는 사회가 될 테니까.     


나는 청년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기대할게.

청년은 2~3십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청년의 열정과 혁명을 가슴속에 활화산처럼

머금었었던 모든 이를 지칭하는 말이야.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하늘로 향해야 하는 것이 실존자들의 사명일 테니까.     


널 기억할게.

초롱하게 빛났던 너의 눈동자도.

네 부모님도 꿋꿋하게 살아 내시라 격려할 거야.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슬픔이 넘쳐나서 다시 우리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애쓰며

몸부림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그리고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청년이 있다면 힘내서 살아내자고 손을 뻗치고 싶어서야.     


함께 살아가자!

친구와 부모님과 이웃과 우리의 소명이 있잖아.      


이제 하늘에서 안식하렴.

우리는 살아가는 자의 천명을 마치고 다시 너를 만나러 갈 거야.

그때는 꿀밤 한 대 맞을 준비 단단히 해라.  


그곳에서 평안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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