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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Jul 27. 2020

그냥 일상을 기록해야 할 것 같은
날에

숲길 걷기 예찬

앞 뒤 동으로 가로막힌 아파트에서는 좀처럼 하늘을 보기 어려웠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그냥 산맥을 이루며 솟아 있는 보기 좋은 산일 뿐이었다. 

앞 뒤가 트인 곳으로 옮기니, 초록이 보이고 하늘이 펼쳐졌다.


사람이 멈추자 자연은 되살아나, 파란 청명함과 구름으로 휘감긴 하늘 바다로 넘실댔다.

산을 마주하니 숲으로 난 길이 나의 산책로가 되었다.

어디로 이어지는 줄 모르는 길을 따라 오늘은 이 길로 다음엔 저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둘레길은 가파르지 않았고 키 큰 나무들이 가려준 그늘과 싱그럽게 흐르는 시냇물로 정겨웠다. 

천천히 발을 움직여 다리에 전해지는 근육의 팽팽함을 즐겼다. 중간중간 놓인 벤치에 앉아 딸과 얘기하고 

아내와도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까지 대동한 산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따라 

나올 리가 없다. 


걷다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깊은 근심과 걱정된 마음으로 혼란한 상태에서도 숲을 거니는 동안은 평안이 스며든다. 숨을 크게 내쉬어 나무와 흙과 풀이 뿜어내는 숲의 기운을 들이마셨다. 어느덧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 내며 시냇물에 손과 발을 담갔다. 싸온 물과 과일로 목을 적시니 적당한 피곤함과 노곤함으로 몸이 가벼워졌다. 

숲에서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서 조곤조곤 깊은 대화를 나눈다. 많은 얘기를 나눈 것이 아니지만 알차고 효과적인 교감이 이뤄지는 것 같다.     

가끔은 아무 말 없이 걷지만 그때는 나 자신과 대화하거나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임을 알기에 침묵하며 움직였다. 흙을 스치는 소리마저 감미로울 때가 있다. 걸으면 햇살에 비친 나뭇잎과 바람이 잔잔한 위로를 전해준다. 이름 모를 새들이 각양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 울림도 퍼진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지만 내일은 또 다른 코스로 걸어보기로 한다.

익숙한 길을 걷다가 새로운 길도 다녀보고 생각지도 못한 공간과도 접해볼 생각이다. 

바위를 만나면 쉬어가고 냇가를 만나면 몸을 적시면서 숲을 걸어가야겠다.

걷는 거리가 늘어나고 다리의 근육도 단단해지면 그때는 정상을 향한 등반으로 바뀔지도 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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