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해가 비친 사이에 빨래를 돌렸다.
늦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요즘엔 스콜처럼 비가 쏟아졌다.
짙게 낀 먹구름은 품어두었던 물기를 사정없이 뱉어냈고, 변덕스러운 하늘에 놀란 사람들은
당황해하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주하게 6월을 마감했다.
그냥 한 달이 지나간 게 아니라 1년의 절반을 보냈다는 생각에 조금 다른 무게감을 느낀다.
하루 두 시간의 행사를 치러내느라 두 주간 정도 정신을 집중해서 준비해야 했다.
월요일에 일정이 잡히면 일요일은 무대 세팅과 리허설 등으로 긴장감이 높아진다.
주말의 쉼이 없이 금 금월로 이어지는 기분이랄까.
그런 일정을 무사히 마쳤으니 몸의 기운이 쏙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데, 어쩜 그리 신기하게도 집에 돌아온 이후에야 몸이 흐물거려지는 건지.
암튼 명징해지지 않는 머리와 개운함이 없는 기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 오늘 하루는 모든 걸
멈추기로 했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빨래를 돌리며 ‘벌레가 꼬이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는 내다 버리라’는
아내의 출근 전 당부를 마음에 새긴다. 빨래를 널며 딸내미가 뒤집어서 벗어 놓은 옷가지를 발견한다.
며칠 전에도 자기 방에 옷을 잔뜩 쌓아놓고 어질러 놓은 것을 보며 엄마의 주의를 들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진 입었던 옷들을 내가 모아서 세탁통에 넣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왜 힘들다고 하세요?”
초등생 딸내미의 어이없는 항변에 옷가지를 널고 개는 수고로움을 이젠 몸으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빌려다 놓고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뒤적거린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새는 좌. 우의 날개로 난다”
오후에는 집중해서 텍스트를 해석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난다면 유튜브에서 몇 개의 강좌를 시청할 예정이고 OTT에서 나름 유익한 영상을
찾아봐야겠다. 갑자기 생긴 나의 시간에 누군가를 불러 점심을 함께하고 싶지만, 그 특정한 사람들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 누군가는 또 정신없이 바쁜 와중일 것 같다.
일에 열중하며 살아왔지만 그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이젠 무슨 일을 해야 하지 걱정이 몰려오곤 한다.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쉬어갈 때는 잠잠히 주변을 정리해본다.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 두고, 버릴 것은 버리고,
몸과 마음을 비우고 머리는 쉬고 또 채우면서.
짧게 비친 햇살에도 옷은 빨리 뽀송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