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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Aug 25. 2021

때로는 가슴이 이끄는 대로

머리와 몸과 가슴

살다 보면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머리를 써야 하는데 생각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머리와 몸이 이끄는 것보다 심장의 뜨거움에 따라야 하는 순간도 있다.

머리와 몸과 가슴이 이끄는 리드와 균형에 따라 사람의 품격이 우러나기도 하고

편협과 비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1.

한 손에는 반찬통을 집었고 다른 손에는 그릇을 들고 있었다.  

밭고랑에서 식사를 하려고 음식을 나르다 그만 순식간에 발을 헛디뎌 앞으로 고꾸라졌다.

손에 든 음식을 내동냉이 치고 두 팔로 안면을 감싸 안았다면 치아가 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몸의 반응이 늦었다. 움켜쥔 반찬을 놓지 않은 대신 안면에 상처를 입었다.

쓰러지는 순간 두뇌는 그릇과 몸의 가치를 저울질하면서 반찬통을 던지고 몸을 보호하라는

판단을 내리겠지만 몸의 운동신경이 발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위

험 앞에서 뇌보다 빠르게 몸을 쓰기는 쉽지 않다.    

  

2.

컴퓨터 게임과 유튜브 영상에 몰입해있는 경우는 또 다르다.

순간순간 나타나는 적을 바로바로 제거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 게임이다.

상대를 발견하는 즉시 눈이 나의 손가락에게 반응을 하라고 알린다. 시선경의 정보를 후두엽으로 보내서 분석하고 정리해서 손가락으로 명령할 시간이 없다. 조건반사와 같이 뇌를 통과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른다.

생각할 틈이 없이 대처해야만 한다. 두뇌를 쓰지 않고 단순해진다.   

디바이스를 통해 영상을 소비하는 순간 현란하게 바뀌는 장면들을 따라가느라 뇌가 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 이런 패턴이 익숙해지면 깊이 있는 사고가 어려워진다.     

 

3.    

무인공습기를 조작하는 군인의 이야기다. 

그는 중동의 위험인물을 제거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무인기는 중동의 모처에 떠 있지만 조종은 미국 본토에서 커다란 모니터를 보며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냥 월 게임 같았다.

의심되는 장소와 인물에게 포탄과 정밀 사격을 퍼부었다. 게임기처럼 상대가 쓰러졌다.

퇴근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빨간 피를 뿜어내며 엠블란스에 실려

가는 사상자들을 보았다. 순간, 자신이 정밀 타격해서 포탄을 쏘아 붓던 건물 더미에 파뭍친 사람들의 절규와 피 흘림이 현실로 되살아난 것이다. 타격은 민간시설에 떨어지는 오폭도 있었고 오인에 의한 민간

인 사살도 있었지만 꺼릴 것은 없었다. 그런데 모니터상의 게임 정도로 여겼던 일상에 심장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생명을 해치고 피를 부르는 일을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공군에서 나왔다.       


4.

홍천에서 기숙하며 대안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5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다.

2주간 머물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아이라 좋아하는 음식과 쇼핑을 한 주간에 몰아서 했다.

아들은 아빠 엄마가 왜 이렇게 과하게 소비를 하느냐며 그냥 평소처럼 먹고 대해 달라고 요

구한다. 여동생은 온통 관심이 오빠에게만 쏠려서 자기는 찬밥이라고 서운해한다.

오빠 없을 때는 우리의 모든 신경이 자기에게 집중되어 좋았던 것을 이제야 깨닫나 보다.

우리는 부모로서 마음이 가는 데로 표현하는 것뿐인데, 또 아이들의 입장은 다르다.  


5.    

우리 교회에 입양 온 새끼 진돗개 암수 봄이 와 여름이가 15개월 만에 성견으로 자랐다.

조그만 녀석들이 어른 등치로 변한 것도 신기하지만 어느덧 6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기특한 봄이를 생각해서 사람들은 백숙도 고아주고 고기 듬뿍 넣은 미역국도 끓여다 먹였다.

봄이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새끼를 돌보며 젖 먹이고, 새끼가 잠든 틈을 타서 다른 곳에 묶어둔 여름이를

만나러 돌아다녔다.

저녁 무렵이면 목줄을 풀어놓아 포천의 너른 교회 마당과 주변을 산책하던 봄이와 여름이었다. 그날 여름이는 목줄이 풀리자 껑충껑충 날뛰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봄이에게로 다가왔다. 평소처럼 같이 산책을 다니며 뛰자고 봄이를 부축이는 것이다.

봄이와 새끼들이 있는 집 가까이로 오는 것을 본 봄이는 잠시 으르렁 거리더니 전후좌우를 못 살피는 여름이의 목을 무는 시늉을 하며 무섭게 짖는 경고를 보냈다.

순간 여름이는 몸이 어름처럼 굳어져 깨갱거리며 봄이의 눈치만을 살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왠지 익숙한 둘의 모습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만화로 치면 봄이와 여름이의 대사가 말풍선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봄이와 여름이   /   6마리의 엄마가 된 봄이  


 여름:  “봄아 우리 전처럼 동네 주변이나 한 바퀴 돌아보러 마실 갈까?

 봄 : “아이고! 철딱서니 없는 애들 아빠야!

       아가들이 눈도 못 뜨고 어려서 언제 엄마를 찾을 줄도 모르고,

       외부의 위협에서 보호해 주려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야 하는데......

       뭐 어딜 돌아다닌다고!  아이고 화상아!     


깨갱 찍소리도 못하고 굳어버린 여름이의 어쩔 줄 모르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씁쓸하고 얄궂은, 그러면서도 이해가 되고 해맑고 애처로운......    

 

몸과 마음과 정신을 잘 겸비하고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럼에도 애써야 한다는 것.

일상에서 느끼며 깨닫는 매일매일이 오늘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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