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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Sep 24. 2021

추석을 지내고 나서

코로나 시국의 명절

전과 같지 않은 명절이었다.

음식을 만들어 내느라 애쓰는 분주함도 없었고 기름에 지지고 볶아대던 명절 전야의 풍경도 사라졌다. 

코로나의 분위기가 조성한 조심스러움이 모든 것을 간소화시켰다. 

누나들과 동생들에게 우리 집으로 모이라고 하자니 인원이 넘치고 부분적으로 추려서 만나자니

오히려 조심스러운 손사래를 쳤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자연히 모이는 구심이 사라졌다.

조카들의 결혼과 출산으로 누나와 자형은 자녀와 손주를 맞이하는 주체가 되어야 했다. 작년에는 동생네가

와서 자느라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이 뒤섞여 복작거리고 이런저런 게임을 즐기기도 했는데...... 

명절엔 늘 함께 있었던 아들이 이번엔 학교의 기숙사에 머무르며 그곳의 사람들과 추석을 보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달밤의 놀이를 즐겼다고 했다. 목소리도 밝았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출가한 누나와 자형을 맞이하고 돌아서면 치우고 정리해서 다시 처가로 향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확연히 달라졌고 한결 여유로워진 명절임에 틀림없다. 

처가도 가까워서 교통이 밀리는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하룻밤을 자고 오는 것도 아니어서 장인 장모님과의 한 끼 식사도 간소했다.      


선친의 묘택에는 진작에 다녀왔다. 추석 쇠기 몇 주 전의 토요일이었지만 도로의 정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새벽 5시에 나선 길이었지만 동생들과 만나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답답한 막힘을 각오해야만 했다. 

추석 전 고향을 찾는 기다란 행렬.

일찌감치 벌초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인지상정이었다.

매해 호호 할머니로 쇠하시는 작은어머니의 손을 반가이 맞잡은 후에 바로 뒷산으로 향했다.  

선산의 끝자락에 있는 부모님의 유택 앞에서 오랜만에 예를 갖췄다. 감사와 회한 따스한 기억과 아픔으로

어울진 상념을 떠올리며, 마침내 풍성하게 채워진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유한한 삶을 산다는 사실 앞에서 겸허해지는 시간이었다.      


연휴 기간에 밀렸던 책을 읽고, 몰아서 드라마를 보다가 수락산 둘레길을 걸었다. 

아내와 딸과 나란히 걸었다.

뭔가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비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도 들었다. 

명절에는 기름 내움이 진동하면서 복작거리고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는 정이 있어야 한다는 

향수가 발동되다가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음미하는 삶도 나름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한편으로 고향을 갈 수 없는 실향민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안 가는 것과 못 가는 것이 다르듯 

모일 수 없는 것과 안 모이는 것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이 더 외롭고 쓸쓸할 사람들을 떠 올렸다. 

그런 분들께 보름달같이 밝은 기운과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연휴의 마지막 날 한참을 걷다가 중국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타인이 차려주는 맛난 짜장과 짬뽕의 매콤함을 즐기는 시간.

설거지로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 없이 휴일을 깔끔하게 끝맺는 탁월한 선택.     

 

나의 명절과 연휴는 그렇게 변하며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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