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리 Oct 24. 2024

"학교? 아니, 재미난 학교!"

입학이유.

 

“엄마, 저 학교 안 갈래요.” 

6학년 1학기였다. 아이가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안 가면 안 돼요?"에서 "안 갈래요. 안 갈 거야!"로 바뀌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학교폭력(왕따)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몸이 안 좋은가? 우선 근처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소변검사, 피검사를 했다. 별이상은 없었다. 몸이 허해서 그런가? 한의원을 갔다. 맥을 짚고 아이 체질에 맞는 한약을 지었다. 세 재를 먹은 아이는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 아이가 정신과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정신과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불안감, 긴장감이 다른 아이들보다 높은 편이고, 약한 우울증상도 보인다며, 우선 약을 먹어보고, 지켜보자고 했다.

영어, 수학, 미술학원을 쉬기로 하고, 학원 선생님들에게 아이 상황을 전하다 눈물이 터졌다.

괜찮아질 거라는, 잠깐 쉬었다 오라는, 힘내라는 말에. 밖에서 전화를 하던 나는 터져버린 눈물 탓에 한참을 걷다가 들어갔다.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첫 일주일을 힘들어했다. 며칠만 쉬다 다시 가겠다고 했다. 죄송하다고도 했다. 나는 괜찮다고 아이를 다독였다. 한 달, 두 달이 넘어가니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다 학원을 아예 다니지 않는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됐다.

학원을 잠시 쉬면 학교를 잘 다닐 줄 알았다. 학원이 힘들어서일 거라 넘겨짚은 탓이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고, 나는 아침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화를 내느라 진이 빠졌다.

     

00초 사건 때문에 예민한 시기였다. 학교 선생님과 이야기를 깊게 나누고 싶었지만, 대면상담도 조심스러워, 학교앱으로 아이와 관련된 문자를 보낼 때마다 얼마나 고민을 하면서 보냈는지 모른다.

전화 통화 한 번이 쉽지 않았는데, 어렵게 연결이 되어도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크고 바르던 아이의 글씨체는 작고 삐뚤어졌고, 숙제는 미뤄지고 아예 하지 않는 날도 생겨났다.

수학 같은 경우 그동안 한 번도 치지 않았던 재시험도 보게 되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했다. 모든 일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힘들어했다. 성적이 내려가자, 자신감이 떨어졌고, 쓸모없는 아이라고 자책했다.

2학기가 되고, 수업일수만 맞춰 졸업을 시켜야지라는 일념으로 아이를 달래어가면서 학교를 보냈다. 일을 하면서도 오늘은 괜찮았을까라는 생각에 불안했고 하교하는 시간이 되면 심장이 빨리 뛰고 배가 아팠다. 아이도 아프고 나도 아팠다. 온 가족이 힘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중학교도 힘들게 다니겠구나,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침마다 등교 전쟁을 할 수는 없었다. 

학교가  이렇게 가기 싫고 불편한 곳이라면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다. 대안이 필요했다. 남편과 나는 서울에 있는 대안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어디가 아이에게 맞는 곳인지 고민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학교가 생각이 났다. 낮은 돌담이 있고, 숲이 우거지고 학교 앞에 계곡이 있었던 곳. 이런 학교에 다니면 너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곳.

      

삼각산재미난 학교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정보가 많지 않아서, 우선 학교 설명회와 아이 겪어보기를 신청했다.

겪어보기를 한 아이는 뭔가 다르다고 했다. 학교라고 해서 갔는데 학교 건물이 아니고,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좀 이상하다고. 하지만 이름처럼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다고? 아! 다행이다. 남편과 나는 안도했다.

      

마지막 관문. 아이 면접과 부모 면접이 남았다. 겪어보기 마지막날 면접을 보는 아이는 전날 걱정을 했다. 아이는 면접을 못 봐서 떨어질 것을 걱정했다. 면접 잘 보는 방법을 물어보길래 그냥 네 생각을 솔직히 말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서로 예상 질문을 만들고 연습도 했다. 겪어보기 마지막날. 아이는 면접을 봤고, 잘 본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이제 나와 남편의 차례. 부모 면접을 보던 날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왜 학교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순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지고 식은땀이 났다. 나는 아이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한 학기만 하면 졸업이고 도중에 포기하면 다음에도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포기할까 봐 그만둘 수 없었다고. 그리고 무슨 말을 했더라.

대문자 I인 내게 면접은 역시 어려웠다.

     

며칠 후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자 아이는 정말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자기가 면접을 잘 봐서 붙은 거라며 기뻐했다. “맞아! 네가 면접을 잘 봐서 붙은 거야. 잘했어!” 우리는 서로 꼭 안아주었다. 이제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