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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Jul 20. 2023

나의 결혼일지 05 - 속옷에 관하여

속옷을 입기는 하는거니



제목에 '속옷'이 나온다고 해서 걱정하지 말기를.


내가 어떻게 쓰려고 노력하던지 상상력과 경험의 한계로 인하여 19금 이상의

에로틱한 이야기는 절대 나올 수 없을 테니까······.



** 이건 그냥 결혼생활 속 '속옷'에 대한 아주 평범한 이야기일 뿐이랍니다.




애인을 만날 때 아마도 위아래 속옷의 색깔을 맞추거나 좀 더 예쁜 속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나?

(물론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시원시원한 사람도 있겠지) 



이슬아 작가 산문집을 보면 가족끼리도, 애인과도, 혼자서도, 나체로 자유롭게 생활한다고 하는데 그 자유로움은 부럽다.



나는 어디에서 던, 누구랑 같이 있던지 보통 속옷을 입고 있으니까, 또 아무래도 은밀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것이니까 어떤 걸 입을지는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모친이 사다 놓은 샴푸가 무엇이든지 화장실 바닥에 잡히는 게 있으면 그 샴푸로 머리를 감곤 했는데(댕기 00든지 엘라 00이던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속옷 역시 아무 속옷(딸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름 있는 브랜드 'B00'에서 사다 주셨어요)이나

모치가 사다 놓은 걸 입어서 위아래 속옷 색이 들쑥날쑥했으며,



모친의 취향이 반영된 만큼 부엉이랑 새도 있고 꽃이 만발해 있는···무늬가 화려하거나···색도 진한 분홍색이거나 보라색이거나···그 둘 다이거나···



어쨌든 모든 디자인이 좀 엄마의 취향만을 반영한, 좀 올드했던 편이기 때문에 애인과 있을 때 그 속옷을 입은 채는 훌렁훌렁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속옷을 직접 사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더라도 '개인적인' 취향을 쌓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인가,라는 생각이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듭니다만)



특정한 순간에는 그때 필요한 디자인을 입어야 할 거 같다는, 익히 보고 들어와서 알게 모르게 심어진 의무감과 왠지 그걸 지켜야만 얻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자존감을 위해 유니 00에서 무난한 무지 디자인으로 '깔맞춤' 속옷을 구비해 놓았다.



정작 나는 도깨비 빤스던지 늘어난 빤스던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이럴 때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애 때는 종종 하던 일이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일상이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가끔의 TPO였으니 이 귀찮은 일들이 가능했는데, 내 속옷 라인은 여전히 조금 화려하고 낡고 촌스러운데···, 잘 입던 속옷이지만 싹 정리하고 다 새로 사야 하나 격렬한 고민을 해야 했다.



빨래할 때 내 속옷이 적나라하게 다 보일 것 아닌가. 따로 빨래하는 귀찮음을 감수할 생각도 해봤지만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귀찮음은 때로 많은 것을 이겨낸다.



지금은 내가 왜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했던 걸까 싶을 정도로 내 속옷에 무감(無感)해졌다.



심지어 남편 옷 정리할 때 그의 속옷을 몇 개 물려받기도 했다. 어차피 결혼 전에는 남동생 것을 내 것처럼 잘 입었기 때문에 딱히 거부감이 없기도 하고, 



반바지처럼 입으면 아주 시원해서 여름에 유용하게 입을 수 있다(자기 속옷을 내 것처럼 꺼내 입는 것에 남동생이 일언반구도 한 적 없는 걸 보면 우리 식구들은 속옷에 딱히 민감하지 않나 봐···아니면 포기해 버렸던 걸까).



여전히 나는 엄마가 사 준 속옷-건조대에 널어놓으면 휘황찬란해서 눈앞이 아찔하고,

무늬로 보자면 마치 세렝게티를 연상시키는-을 잘 입고 있고,



구멍이 나지 않는 한 계속 잘 입을 거다. 가끔은 내가 원하는 속옷을 찾아서 사 입기도 하는데

'편했으면 좋겠다' 외에는 아직 속옷 취향이 뚜렷하지 않다.



혹시 나처럼 결혼 전 속옷 라인업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굳이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그렇게 많이···보여줄 일이···없을 걸요,



그냥 입던 대로, 입고 싶은 대로 마음껏 편한 걸로 입으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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