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소대 수술을 결심하다
설소대 수술을 결심한 어젯밤부터 '놀림'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뭐로든 놀림을 안 받아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설마). 모두 유치하고 미성숙한 시절을 보냈고 그런 동무들과 함께 자랐으니 누구든지 남을 놀리기도 했겠고 남에게 놀림받기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놀림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놀림은 지독히도 절 따라다니며 마음에 깊이 박히기도 했고 어떤 것은 가볍게 긁기만 하고 농담으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그 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20대 전부를 쏟은 것 같기도 합니다.
첫 놀림은 피부색에 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유독 피부가 탄 편이었거든요. 사실 요즘 애들처럼 학원이 아니라 불볕더위에도 놀이터며 길거리를 활개 치던 8-90년대 초등학생들 중 누가 그렇게 선크림을 바르고 다녔겠습니까만은, 그런 애가 나 하나만 있던 건 아닐 텐데, 놀이터에서 '아프리카 쏼라쏼라'라고 불렸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런 놀림에 의연한 척했지만 저는 제 탄 피부가 엄청, 매우, 많이 싫어졌습니다. 제 돈 주고 선크림을 사 바르는 나이가 된 이후로는 작심하고 태양을 피하고 다녔습니다.
가수 비가 제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선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항시 지참할 것과 살을 가릴 수 있는 여벌의 옷-자외선을 차단하는 유니클로 에어리즘을 추천-을 들고 다니라고 알려줄 겁니다. 사람들한테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 이 유난스러움을 이해할······사실 이 정도로 집착을 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러면 타인에게 이해 따위 구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휴양지에 별 관심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 섭니다. 태양을 피하려고요. 선크림 꼼꼼히 바르는 건 굉장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맨살이 많이 드러날 일은 애초에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제 피부가 하얘졌느냐 하면, 네, 이제는 사람들이 안 놀립니다. 이제 피부로 누굴 아프리카 어쩌고 놀리는 게 얼마나 무례하고 못돼 쳐 먹은 건지 우리 중 다수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 제 주변에 이제는 알만한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아직도 그런 걸로 놀림을 받고 가슴 아파하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두 번째 놀림은 옷이었답니다(이 모든 놀림이 순차적으로 일어난 건 아니고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나 그냥 이렇게 쓰겠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어깨뽕이 한껏 들어가 자칫 쟤가 왜 어깨를 저렇게 들고 있어······싶은 초록색 모직 재킷을 입는 바람에 요구르트 아줌마라는 놀림을 받았고 그 옷이 아니라 다른 걸 입어도 어쨌든 옷을 잘 못 입는다며 무시를 당했습니다.
세 번째 놀림은······이걸 가지고 놀림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기억이 잘 안 나서 좀 쓰기 애매하지만 놀림을 안 받았을 리 없으므로 그냥 쓰겠습니다. 역시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다 큰 딸을 안고 머리를 감겨주기 힘겨워하던 모친이 절 데리고 미용실에 가서 바가지머리로 자르도록 미용사에게 주문했고-저는 영화 <집으로>에서 유승호가 바락바락 울며 할머니에게 대들던 그 심정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개학날 그 머리를 한 채로 차마 교실에 들어서지 못하고 복도에서 서성이다, 절 발견한 누가 선생님에게 제 존재를 알렸고, 선생님이 절 교실로 데리고 들어갔고······90년대 초등학생 여자애들 머리와는 사뭇 달랐을 테고 다르다는 건 놀림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죠.
2020년대 이후, 태닝을 한 피부와 쇼트커트, 그리고 레트로 패션이야말로 얼마나 힙한 것인가요. 사람들은 돈을 주고서 기꺼이 태닝 기계에 들어가고 연예인 김나영 씨의 아들들도 제가 했던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레트로는 산업 전체의 유행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90년대 초등학생이 아니라 20년대 초등학생이었다면 힙 오브 힙통령으로 학교를 주름잡는 멋쟁이 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설소대 수술 고민을 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고 말씀드렸었지요. 발음, 발음이야말로 제겐 유구한 역사가 있는 놀림입니다. 발음처럼 저를 줄기차게 따라다닌 것도 없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얼음땡 놀이를 하는 와중에 술래가 다가오자 제가 다급하게 외친 얼음이 '어듬'이라며 그대로 제게 술래자리를 넘기고 홀가분하게 팔랑팔랑 뛰어간 녀석이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살다 왔냐거나 외국인이냐는 질문은 점잖은 편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제가 '뽀로로' 발음을 하면 제 혀재간에 모두들 신나 하며 한 번 더 해보라고 부추기곤 했습니다.
"뽀도도 해봐, 뽀도도!"
저는 사람들을 웃기는 게 좋았기 때문에 기꺼이 몇 번이고 해 줬습니다. 별 노력 없이 입만 열면 사람들을 웃겨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재능입니까.
대학생 때 첫 MT(새터라고 불렀는데 새내기······터 뭐겠죠)를 갔을 때 술자리에서 대학 오기 전 별명이 뭐였는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제 별명이 '00동 뽀뚜루'라고 했습니다. 국어국문학과 선배가 너무 진지하게 외모로 자기 비하를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저는 뽀뚜루가······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속 전통으로 '뽀뚜루'라는 나무 막대기를 턱에 착용하는 사람들의 외모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뽀뚜루'를 '뽀드두'라고 잘못 발음하는 제 혀 탓에 생긴 별명이라고······차마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그 선배가 저한테 너도 예뻐, 라고 했기 때문에·····아니 대체 왜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한 걸까요, 그 선배는.
발음이야말로 가장 오래 저를 놓아주지 않던 놀림의 소재인데 그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고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쳐야 할 문젯거리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으니까요. 오히려 저의 어떤 독특함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이젠 달라졌습니다. 먹고살 궁리에는 이 '발음'이 들어갑니다. 발음을 고치지 않으면 저는 다른 먹고살 궁리에 실패할지 모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유로 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실히 노력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왔고 때로 성공했습니다. 이번에도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