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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Jul 20. 2023

나의 결혼일지 02 - 청소에 관하여

우리의 청소는 다르게 간다



나의 결혼생활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단한 반전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아주 바람직한 동거인이라는 것이며, 나의 남편은 내 예상과 걱정보다는 훨씬 덜 위생적이라는 거였다.

나 혼자 이 집에서 더럽고 지저분한 사람일까 봐 긴장했던 세월이 아까울 정도였다.



남편은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머리카락에도,

내가 아차, 다 쓰고 미처 치우지 못해 화장실에 두고 온 구겨진 화장 솜과 면봉에도, 세수 한 번 하고 나면 흥건해지는 화장실에도 별 관심도 없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 커피 가루가 많이 떨어져 있네···커피 마셨구나,

하고 작은 목소리로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뭐라고?

하고 되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빙그레 웃곤 했다.



나는 의외로 꽤 깔끔한 사람이어서 눈 뜨자마자 침대며 이불을 정리하고 온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구석구석 돌리며 벽에 탁! 부딪힐 때, 구석으로 몰고 가며 남김없이 먼지와 내 머리카락을 빨아들일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설거지가 생기면 바로바로 해치워버렸고, 화장실에 주황색 물 때가 뜨는 것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며 저거 치워야 하는데, 생각했다(그렇다고 바로 없앴다는 건 아니고). 화장실이란 하얘야 하는 거니까, 싶었다.



남편은 컵이며 포장지 등 먹고 난 흔적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뜨거나, 심지어 재료를 꺼내고 나서 빈 비닐봉지를 냉장고에 남겨두기도 했다(왜, 재활용할 때 시원하게 하고 싶냐).



한 번 더 입을 거라며 입었던 양말이나 바지를 구석에

(집이 워낙 좁아서 그 어디에 두어도 눈에 잘 뜨이는데도!) 던져두거나 빨래한 옷을 반듯하게 개 주면 다시 입을 거라며 옷장에 넣지 않고 바닥에 쌓아 놓았다.



나는 모든 의아함과 옅게 피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남편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흔적들을 모른 체하거나, 그대로 두거나 마음이 내킬 때만 내가 치웠다.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남편의 흔적을 처리하기도 했는데, 옷 개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남편이 아무렇게 벗어 놓은 옷이나 양말을 보면 빨래 통에 던져 놓거나(남편이 그걸 다시 건져 입어야 한다고 볼멘소리 하는 건 듣지 않는 셈 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시 입거나 말거나 곱게 개어 놓은 다음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남편의 흔적을 주우며 돌아다니거나 컵에 음료 자국이 말라붙지 않게 바로 씻어 놓을 때도 있지만 남편이 면도하고 그대로 방치해 둔 털을 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화장실을 나섰다(그건 별로 치우고 싶지 않아).


옷이던 설거지던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하겠지 했고, 실제로 남편은 가만히 두면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남편도 나와 똑같은 것 같다. 설거지를 할 때 내 것만 빼놓고 할 때도 있고, 다 할 때도 있고 제 맘 내키는 대로 한다.



나와 남편이 '청소'에 관해 갈등을 빚은 적이 없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그냥···알아서 할 것이라고 판단하여···'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서로의 위생 기준이 비슷한 것도 그 이유겠지만(괜히 나 혼자 겁먹었네).



청소에 관해 서로 상호 보완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에게 장점이 되어 준다. 나는 눈에 보이는 큼지막한 부분은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지만 세세한 부분은 잘 신경 쓰지 못한다.



남편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긴 해도 아주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텀블러, 주전자를 주기적으로 세척하고 뜨거운 물로 소독하고 해에 말리는 것도, 탄 냄비를 수세미로 다시 반들 반들 하게 닦아 놓는 것도, 칫솔로 집게 끝 부분에 음식물 낀 곳을 말끔하게 만드는 것도 남편이 한다.



겨우 결혼생활 7개월 신입 주제에 뭘 알고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굳이 한마디로 부부간 청소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내버려 두시면 어떨까요. 언젠가 치우겠지, 하고 흐린 눈을 하고 넘겨버리는 것은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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