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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Feb 16. 2022

다움웍스 독립 타임라인

내 이름을 건 회사


퇴사 직후

출퇴근 두시간이 없어졌다. 프리랜서 초창기엔 들어오는 일이 없어 시간이 남아 돌았다. 내 인생에 이런 여유가 언제 또 올까. 드라마 정주행을 시작했다. 이 드라마 저 드라마 도장깨기 하듯 넷플릭스와 왓챠로 매일을 보냈다. 프리랜서라면 자고로 낮과 밤이 바뀌어야 낭만적인 법. 이제 곧 이직을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야하니 자유가 주어졌을 때 마음껏 누려야한다. 더 열심히 더 격정적으로 올빼미 시청자가 되었다.


프리워커 한달

드라마만 보며 살자니 양심의 가책을 슬슬 느끼기 시작했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할 것 같은 조바심에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만들었다. 내 개인 사이트의 도메인을 무엇으로 할지, 나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어느 회사의 대리 누구입니다’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한 줄을 적고 싶었다. 그런데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었다. 그래서 별다른 설명없이 이름 아래 Graphic designer라고 적었다. 내가 사는 곳 대한민국 서울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니 based in Seoul, Republic of Korea를 덧붙였다. 대한민국 서울의 그래픽 디자이너. 그게 전부였다. 더 할 말이 없었고 더 쓸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원래 사업자도 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거래처에서 세금계산서 발행을 원해서 가볍게  한 장 냈다. 어차피 곧 이직하면 사라질 사업자등록증, 그저 종이였다. 그런데 회사명을 뭐라고 하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마땅한 사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름은 고유명사라 상표등록을 하지 않아도 효력이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난 내 이름을 좋아한다는 사실. 독특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황다움 디자인 스튜디오라고 명했다. 건축사무소같은 진중한 이미지를 내보려했다. 어차피 혼자하는 1인 회사니 솔직담백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을 같이 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에도 사업자를 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폐업 할 계획이었기에 굳이 내가 먼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이직이었다.


다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마주하고 이름의 의미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내 이름의 뜻은 아름다움, 나다움, 참다움이다. 참 귀한 이름이다. 그런데 난 내 이름 뜻처럼 아름답고 나답게, 참다운 인생 살고 있나? 한번이라도 그렇게 살아 본 적이 있나? 정말 내 이름에 걸맞는 그런 인생이었나?


아니.


문득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다움이라고 불렸지만 난 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살아왔다. 남의 눈치를 보며 세상의 기준에 맞추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불안했고 내 자신이 답답했다. 내 꿈과 열정이 아닌 사회가 가라는 길을 뒤쫓아갈 뿐이었다. 나답지 않았고, 참답지 않았기에 전혀 아름답지않았다. 텅빈 시간들을 보내며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마주했고 그제야 내가 보였다. 그곳엔 텅빈 내가 있었다.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건지 알 수 없었다.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도와줄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걸. 그때의 난 도와달라고 말하는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유튜브 시대. ‘나 자신을 아는 법’, ‘나도 나를 모를 때’ 이런 문장들을 검색했고 수많은 영상들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을 ‘자아발견’이라고 부름을 그때서야 알았다. 진부한 표현인 자아발견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젊음을 보냈다. 졸업 - 취직 - 이직의 순서를 당연하게 밟으면서.


프리워커 6개월

깨진 인간관계, 노동의 현타 등 여러 사건의 직격타를 맞으며 내 자아는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모든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나는 어쩌다 이렇게 내 탓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된 걸까. 모든 현상에 ‘왜’를 붙여가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거야 대체 왜!


원인을 찾는 여정은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기억 속에 묻어둔 장면들이 뜬금없이 하나씩 튀어올라왔다. 밥먹다가 이 장면 하나가, 자려고 누우면 저 장면 하나가, 산책길에 불현듯 어떤 장면 하나가 툭. 잊고 있던 기억들이 튀어나와 나를 휘저었다. “너 이때 이랬다~ 까먹고 살았지? 난 다 알고 있었눈뎁” 기억이 날 놀리는 것 같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기에 묻어두었다. 그 기억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 더 많이 일하며 정신의 집중을 옮겨보려 했지만 기억은 끈질기게도 늘 나를 따라다녔다. 더이상 기억에 휘둘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 이불을 뻥차고 벌떡 일어나 “난 더 나아지고 말거야!!”라고 소리쳤다. 울며불며 내 자신에게 명령했다. 나 이제 이렇게 살지 않을거야. 난 더 나아질 수 있어! 양귀자의 소설 [모순]의 첫장면과 비슷한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도했다. 아직 내게 용기 낼 힘이 남아있음에,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읽고 쓰며 혼자되기

우선 책을 읽었다. 자아 발견에 관련된 책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고, 그 중 한 책에서 자신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소개했다. 글을 쓰면 나의 감정과 내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책이 말했다. 그래서 바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무엇이든 떠오르는건 다 적어갔다. 감정을 토해내듯 화가나고 분할 때마다 글을 적었다. 그렇게 적은 글을 몇일이 지나 다시 읽어봤다. 내가 이런 감정들을 가지고 있구나하고 제 3자의 시선으로 읽고 있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그 시절 쓴 일기장에는 울분이 가득한데, 지금 보면 귀엽기까지하다. 온갖 성질을 일기장에 부렸다.

그래도 힘들었던 시절의 글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난 괜찮아질 수 있다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뿐이라고 그러니 이 시간들을 회피하지 말고 맞써며 보내자는 희망으로 모든 일기의 끝을 맺었다. 내가 되고 싶은 이상의 모습과 부족한 현재의 내 차이가 나를 화나게 했다. 나의 기대와 야망과 낮은 자존감이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글을 쓰며 구멍난 감정을 메우고, 페인 상처를 감싸갔다. 집밖에 잘 나가지 않고, 사람들을 왠만하면 만나지 않았다. 나와 시간을 더 길게 가졌고 진득히 나에게 집중했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스스로의 내면을 알아갔다.


다움웍스로 사명 변경

그러던 중 고정적으로 거래처 일이 잡히고, 여러 프로젝트들도 들어오며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아갔다. 사업자등록증을 보일 일이 많아지며 사명을 바꾸고 싶어졌다. 황다움 디자인 스튜디오는 꼬장꼬장한 이름 같았다. 조금 더 쉬우면서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이면 했다.


나는 언젠가 이직을 하겠다면서 내 회사명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 마음 한켠에 내 이름으로 성공하고 싶은 야망이 컸던 것이다. 나는 내 이름을 내건 이 회사가 더 나답게, 이왕이면 잘 되었으면 했다. 내가 나답게 살겠다고 부르짖으며 다짐한 순간, 내 내면을 직면한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 회사로 다시 가기 싫구나. 나답게 자유롭게 살고 싶구나. 그리고 고민 끝에 다움웍스로 사업자명을 바꿨다. 더 짧고 명료하게, 나답게 일하려고.



다움웍스 1년 : 공유 오피스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움웍스로 사업자명을 바꾸니 이제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다. 개인 사무실을 갖기엔 금전적인 무리가 커 안정적으로 공유오피스 위워크에 들어갔다. 정확히 독립 1년차가 되는 6월이었다. 집에서 혼자 일을 하다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유오피스로 환경을 바꾼건 좋은 터닝포인트였고 큰 자극제였다. 위워크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바이브가 있다.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의 편안한 복장, 자유롭고 느슨해보이지만 열정적인 눈빛들. 사람들이 이렇게나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구나. 방구석에 콕박혀 생활하던 은둔자는 이제 사람들 속에 들어가도 괜찮았다.

또한 공유오피스를 사용하며 출퇴근이 생기니  시간들을  생산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거래처들이 회사라 나도 9 to 6 지켜야했다. 더이상 야행성 루틴은 지속할  없었고, 자연스레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며 건강한 루틴이 생겼다. 많은 것이 바뀌던 시기였다. 나라는 사람도, 일하는 환경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았다. 이따금씩 불안정한 감정이 튀어나올 때가 있지만 다스리는 법을 터득했고,  이상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 시점부터 열받을 때마다 서점에  책사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책은 정말 명약이다.) 불확실한 세상에 나를 확실히 안다는 ,  사실이 내게  믿음을 주었다.


글을 쓰며 나를 다독이고, 시간 계획을 세우며 하루를 선명하게 살 수 있던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 시점에 게렌하푸가 만들어졌다. 표어는 '시간의 이름'. 내가 되는 시간에 이르렀을 때 그 시간의 이름을 각자만의 이름으로 짓길 바라며. 달력과 플래너 등 스테이셔너리 제품을 먼저 선보였고 올해는 공예 제품들을 출시할 예정이다.

 

다움웍스 1년 6개월 : 단독 오피스

이제 공유 오피스가 아닌 단독 오피스를 쓰고 있다. 꼬였던 마음들을 풀며 더 단단해졌고 내면에 큰 사랑을 품었다. 나를 괴롭히던 기억 속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럴 수도 있는 일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한 부모님의 사랑, 친구들의 사랑과 수많은 이들의 베품이 그제야 보였다.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온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정성과 희생이 없다면 나도 없었다.

내 사랑과 고마움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작업실에서 많은 프로그램들을 열고 있다. 내가 나를 찾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된 것 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자기다움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 이게 내 올해의 목표다.


나는 이제 나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나는 사유를 표현하는 사람이다.   

문장이 되었든 그래픽 디자인이 되었든 공예가 되었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브런치 작가 신청란에 다른 건 몰라도 솔직하게 쓸 수 있다고 적었다. 글을 잘쓰지 못해도 솔직하게 쓰고 싶다. 솔직하다는 건 진심이라는 뜻이다. 늘 솔직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다움웍스 황다움입니다.   

나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고 있다.


자기 소개를 쓸데 없이 길게 하면 사족인 것 같아 여기서 그만.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나는 ‘자기다움의 아름다움을 발현하는 사람’이다.


내일도 기대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6개월의 독립기. 나는 여전히 새로운 나를 계속해서 발굴 중이다. 새로운 경험들과 만남들이 새로운 나를 만들것이다. 내일의 나는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지금의 나는 나답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이 하루들이 만들 내일의 나를 기대해보자. 분명 신기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삶이 당신답게 아름다웠으면 한다. 여기 한 사람이 진심으로 당신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그러니 부디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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