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이 이제야 배우는 것
프리랜서가 된 후, 스스로 스케줄을 조율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학기가 시작되면서 방학과는 다른 스케줄로 움직이는 학생들 덕에 내 시간표가 요동쳤다.
계약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하루 일이 취소되면, 한 달 예상 수입에서 곧바로 마이너스가 된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시간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지킨다. 직장인처럼.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집이 있었다. 주 1회 수업을 하던 곳인데, “이번 주는 안 될 것 같아요.”라는 연락이 두 주 연속 왔다. 처음엔 ‘오예, 쉬는 시간이 생겼네!’라며 가볍게 넘기려 했지만, 예상했던 생활비에 빈틈이 생기자 당황스러웠다.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냥 버텼다. 그런데 다른 계약까지 엉키면서 결국 이 계약을 파기하기로 결심했다.
연락을 하기 전,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계약 파기를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소리를 지르거나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결국 우황청심환까지 찾아 먹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 스케줄이 맞지 않아, 계약을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보내고는 휴대폰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문자 너머로 공격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영겁같던 10분이 지났다.
"알겠습니다."
조금 맥이 빠졌다. 이렇게 간단히 끝날 일이었는데, 나는 왜 이토록 절절 매고 있었을까. 마치 예전처럼, 소속 집단의 막내였을 때처럼. 혼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한 걸까. 나는 이제 어른인데, 아직도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마지막 횟수 일정을 잡고 대화는 끝이 났다.
어른이 된다는 건, 불편함을 밀어내고 내 의사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걸 안다. 익숙해지면 좋겠지만, 30대가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다. 과거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원하는 걸 말하면 윽박지르고, 놀리고, 비난하고, 무시당했다.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제 내 곁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잘한 일은, 그런 인연을 하나씩 잘라냈다는 것이다.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다.
사실, 그냥 속절없이 "이때까지 안 가르쳐준 엄마 탓이야!"하고도 싶지만, 20대 이후에도 배우려 하지 않았던 내 탓도 있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누구도 나에게 소리를 지를 권리는 없다는 것. 그리고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주먹을 꽉 쥔 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외쳐야 한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빛으로, 무른 땅바닥이라도 단단히 박힌 두 발로, 나는 보여줄 테다. 이젠 나도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