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을 얼룩이라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

교실 밖으로 닿지 않는 목소리

by 백수안


방과 후, 텅 빈 교실.

두 아이가 교실에 들어왔다.

물건을 챙기려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아아아앙!!”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야!”

고함치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조용할 수 없는 오후다. 둘을 불렀다.



레이저를 쏘는 듯이 양이를 째려보며 오는 훈이

한쪽 팔에 크게 붉은 기운이 올라온 눈물 범벅인 양이


자초지종은 이랬다. 양이의 사물함은 훈이의 사물함 위에 위치했다. 양이가 사물함 문을 열었을 때 밑에 있는 훈이의 머리가 닿을 뻔했다. 확 문을 열어 자신의 머리가 다칠 뻔한 것에 열 받은 훈이는 바로 양이가 손을 넣고 있는 사물함의 문을 닫았다.


양이의 입장을 듣고 있는 와중에도 꼬불꼬불한 머리의 훈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쟤가 사물함을 활짝 열어서 제 머리가 부딪힐 뻔 했다고요!”


아무리 위험했다고 해도 말로 하지 않고, 바로 폭력을 일삼은 것은 잘못이라는 말을 했다.

그래도 훈이의 붉은 얼굴과 주먹은 풀리지 않았다.

양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사물함을 세게 열어서 미안해.”


“미안”


훈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한다. 전혀 미안하지 않은 눈치다. 눈도 여전히 뾰족하게 떴기에. 훈이와의 대화는 남아있었다. 눈물을 닦으면서 살갗이 살짝 까진 팔을 부여잡고 있는 양이를 보건실로 보냈다. 당당하게 자기 갈길 가려는 훈이를 잡고 행동의 문제를 반복해서 이야길 한다.


“근데 왜 저만 잡아요?”


라며 삐뚤게 말하는 훈이.


“아, 방과 후 늦는다고요!”


나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지난주도 이런 일로 1시간 넘게 설득하고 말했지만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의 오후도 훈이와의 대화로 빠르게 흘렀다.



퇴근 후, 평화롭지 않은 오후의 여파로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청량리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어제 밤에 본 짙은 빨강의 맥의 루비우 색상 립스틱을 하나 사면 이 지친 두통에서 자유로워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깜깜했던 대화와는 달리 백색의 환한 빛의 백화점 입구에 한 발 들이는 순간, 시퍼런 휴대폰 빛이 옷에서 발했다. 진동의 춤사위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나 또 익숙한 글자가 보인다. 단, 5글자 [강훈 어머니]. 조심스럽게 루비우 색상의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미루는 이 통화는 내일은 두 배로 증식하는 바이러스다. 백화점 구석에 멈춰 서서 불안을 크게 내쉬고 공기를 마시어 몸을 가볍게 한다. 통화 버튼을 누르며 가볍고 밝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네~어머니!”


이젠 식상하리만도 한 어머니의 인사말이 시작된다.


“선생님, 오늘 훈이가 억울한 일이 있었다고요”


증인은 낱낱이 피고인의 행위와 범죄 추측 사유를 이야기하였다. 정황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까지 조목조목 나열했다. 그러나, 상대는 팔이 심히 안으로 굽은 사람이었다. 피고인의 친족에겐 이런 객관적인 현장을 목격한 증인의 말 따윈 귓등에도 안 들린다.


“선생님이시면, 그 자리에서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아이를 이해하고 납득을 시켜주셔야지요. 이렇게 억울함을 남기게 해서 보내시면 어떡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애는 이야기를 차분히 하면 다 알아듣는데, 그냥 보내시니까 억울해하죠! 내일 손 잡고 이야기해주세요.”

같은 결론, 억울함을 남기고 보낸 증인의 탓이다. 여러 번 입장을 전하지만 쳇바퀴를 돌아 제자리일 뿐이다.


“네, 내일 제가 더 달랠게요.”


해결방법은 정해져있다. 져주는 수밖에. 그렇게 또 오늘의 패소를 하고 만다. 이 통화의 목적은 모호해지고 나의 역할은 모호해진다. 그녀의 눈엔 집에서 억울해 하는 불쌍한 내 자식뿐이다. 세상의 악함에 피해받은 내 자식. 곰팡이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녀는 얼룩만 쓱 페인트로 덧칠한다. 오히려 얼룩을 지적한 이들을 탓하며 얼룩을 가린다. 오랜 시간 습기를 먹고 퍼진 곰팡이는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만든다. 얼룩을 얼룩이라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


결국 증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1년 맡았던 증인의 역할을 내려놓으며 다음 증인에게 넘긴다. 모든 악은 처음부터 악이 아니었다. 작은 실수를 악으로 키우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그 대가는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결과일지는 확답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우리가 속한 세계는 그런 과거가 만든 것임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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