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나는 물을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긴 물줄기를 응시할 수 있는 이 자리는 명당이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물처럼 나의 마음도 같이 움직인다.
더 넓은 파란빛을 눈동자에 담기 위해 난간 위로 살짝 올라선다. 금속 기둥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킨다. 내 키만큼 높아진 눈높이 덕에 고층 빌딩의 전광판이 훤히 보인다. 가정의 달에 맞춰 어버이의 은혜란 교훈을 담은 영상인가 보다. 강가 주변에 물든 봄단풍에 어울리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반복 재생된다. 마치 교장선생님의 조례처럼.
나 외에 다른 방문자들이 많았는지 ‘생명은 소중합니다’라는 잔소리가 쓰여있다. 발아래에 글자를 읽어본다. 문장의 부분 부분이 두 발에 가려져 새로운 단어가 보인다. ‘생... 은 소... 다.’ 솔의 눈처럼, 맛없는 건강 음료 같다. 발을 살짝 옮겨 다른 단어를 만든다. ‘생명... 소.... 다.’ 사이비 교리에 빠진 성도들에게 축도를 하며 나눠주는 사이비 교주의 성스러운 음료명 같다. 1987년 시끌벅적한 사이비교로 일어난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이 연상된다. 예능 프로그램 ‘꼬꼬무’에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놓아 검색하다가 본 흑백 사진. 하늘을 향해 내민 교주의 손을 바라보는 빛을 잃은 눈동자. 겹겹이 쌓인 무더기의 잔상이 오래 남아 며칠 잠을 못 잤다. 다른 글자로 만들자. 생명이란 글자를 가리고자 발을 옮기다 중심을 잃었다.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기둥을 움켜쥐고 나서야, 휘청대는 몸은 멈췄다. 심호흡을 하며 발아래 초록빛과 눈을 마주쳤다.
유치원 시절, ‘초록빛 바다’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가사처럼 물속 세계는 즐거울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첫 바다수영의 경험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8살의 나는 상어가 벌린 입처럼 큰 파도의 어둠 속에 허우적거렸다. 빛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초록색과 함께 들어온 물이 입에는 짠맛으로 코에는 매운맛으로 남았다. 그건 어둠의 공포였다. 그 후로는 가슴 높이를 넘는 물에는 들어가지도 않았고 물속 세상 탐험은 꿈꾸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필리핀 세부, 태국의 푸껫, 터키의 안탈리아 등 세계 곳곳으로 놀러 갔지만 초록빛 물의 탐험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본 익사 사고 뉴스 사이에 내 얼굴이 겹쳤다. 어쩔 수 없이 놀이가 아닌 생존을 위해 수영장으로 향했다. 배우기 시작한 지 2달이 되어도 꼭 잡은 키판을 놓기란 쉽지 않다. 다른 수강생의 자유형을 보고 심호흡을 하고 물속에 들어가 허우적거리며 잊힌 꿈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5살 이후로 매년 한 번씩 같은 꿈을 꿨다. 고등학생 이후론 그 꿈은 기억 속에 사라졌는데, 생생히 돌아왔다.
장미꽃이 만개한 마당. 그 마당 한가운데 가족의 목욕탕이자, 이불 빨래용 주황색 대야. 무언가 잘못한 나는 벌을 기다린다. 대야 안에 채워진 물 위로 얼굴이 비친다. 가까워진 얼굴은 대야의 물에 삼켜진다. 머리를 향한 힘에 바둥거리며 물속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진한 잔상이 남은 꿈은 기분 나쁜 감정만 남긴 채 눈을 뜨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함께 잔 인형들을 내팽개치고 엄마아빠 침실로 기어들어갔다. 엄마의 품은 차가운 물과 달리 따뜻했기에 들숨날숨 고르게 내뱉으며 다시 잠에 빠졌다.
흥얼거리며 만든 요리들, 밤마다 틀어준 불안함을 잠재워줄 클래식 피아노, 손수 만든 노란색 원피스, 함께 키웠던 방울토마토와 딸기 묘목. 간혹 나의 새파란 독기 어린 반항이 간간이 이어졌지만 대부분 엄마는 나에게 도피처였다.
그 꿈이 다시 기억나게 된 것은 수영 탓이다. 수영장 속에 음.... 파 하는 순간 느껴지는 찐득하고 기분 나쁜 기억은 돌아왔다.
어린 시절 차가운 물의 기억을 무찔러준 엄마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통화 중”
기계음 이후에 들리는 잔잔한 물소리 배경음악이 몇 분이 흘렀나.
전화기 너머로 나의 해결사가 받았다.
-엄마
-왜
-나 예전 꿈이 너무 생생해
-뭔데
-나 4살 때 왜 내 머리를 물속에 넣었어?
-기억 안 나. 그리고 오죽하면 내가 그랬겠니?
얼음보다는 따뜻하지만 물이 따뜻하진 않다. 따뜻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뿐, 실상은 다른 건가. 나의 도피처는 믿음이 만든 허상인가. 오랜 시간 덮어있던 천이 찢겨 실체의 부분을 보인다.
풍덩.
생명체이길 포기한 물체가 강물에서 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