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회사 후배의 퇴사기

by 제이

겨우겨우 회사 일을 마치고 늦은 퇴근을 했다. 나가서 김밥천국에서 밥을 대충 먹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포근한 침대 위에 지친 내 심신을 눕혔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를 넷플릭스로 틀어놓고 소리는 죽인 채 오랜만에 친구 A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회사 후배 B에게로부터 카톡이 하나 왔다.



그리고 나는 그 카톡을 보자마자 친구에게 말했다.


“나 지금 우리 팀 후배랑 통화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응 그래그래 안녕”


그리고 회사 후배 B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B는 회사에 입사한 지 4개월밖에 안된 21살의 팀 후배였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많이 힘들어하는 B가 계속 눈에 밟혔다.

한번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입사한 다른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만 불러서 밥을 사주는 것도 좀 쉽지 않았다.

사실 이건 핑계고……… 내가 여유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그 친구를 챙기기에 내가 너무 힘이든 상태였다. 남을 위로하기보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구하고 다니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날은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다. 사실 카톡에서는 티가 안 났지만 전화를 걸어보니 B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다.


후배 B: 주임님, 사실 저 너무 힘들어요. 사람들이 계속 저를 무시하는 걸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매일 그 주임님은 동기 언니만 챙기고… 저한테는 뭐라고만 하고… 제가 더 잘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상황은 자꾸 악화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그게 무슨 말인지 다 이해가 갔다. 사실 다른 주임 한 명과 두 명의 파견직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내가 봐도………다른 두 명이 후배 B를 왕따 시키는 게 다 보였다. 밥 먹을 때도 그 둘만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또 일도 익숙지 않은 그 친구에게 굉장히 압박과 푸시를 가했다.


그리고 그 전날 업무분장에 대해서 그 주임과 다른 대리에게 논의를 했다고 했다. 그때 그 대리는 후배 B를 탓했다. 얘기만 전해 들었지만, 3년간 그 대리를 봐온 나로서는 그 대리가 어떤 억양과 표정으로 얘기했을지 상상이 갔다.

“너는 진짜 무책임하다. 너 나가고 너보다 더 어리고, 더 경험이 없는 애가 들어와서 너보다 일 잘하면 넌 뭐가 되는데?? 너는 뭐 다른데 더 좋은 데 가서 일할 수 있어? 너 내가 너 일 다하면 네 월급 나 다 줄 거야??”


이 얘기를 듣고, 그 친구는 '아… 더 이상 가망이 없구나.. 퇴사를 해야겠구나' 결심을 했다고 한다.


나는 얘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나의 상황에서 퇴사 결심을 이미 한터여서.. 그 친구의 상황도 마음도 다 이해가 가고… 이 친구가 얼마나 상처 받았을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나는 회사 선배로서 '그래! 퇴사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 얘기 한 마디가 그 친구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에 책임을 져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책임은 오로지 B가 감당해야만 한다.


: 근데 B야… 업무부장은 그들과 나눌 얘기가 아니야. 그건 팀장님께 말씀드려야지. 그들이 뭔데? 그들도 그냥 실무자야. 아무런 의사결정권이 없는 실무자인데, 그들에게 얘기를 해서 뭐하겠어. 팀장님과 면담 후에 퇴사는 차차 생각해보자.


후배 B : 네, 주임님.. 내일 다시 한번 팀장님께 말씀드려볼게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후배 B는 팀장님께 면담을 신청해서 면담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업무분장 얘기를 꺼내지 않고, 그냥 퇴사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B가 퇴사 의사를 밝히자, 팀장님은 알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다만 '못 챙겨준 건, 네가 미워서가 아니라 바빠서 그런거니 너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흠…… 이게 내가 3년 동안 모시던 팀장님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니 좀 씁쓸했다.


메신저로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 후배가 너무 안쓰러워서 저녁 사줄 테니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 폭우를 뚫고 그 친구가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그냥 그 친구에게 맛있는 거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심경과 앞으로의 계획, 뭐든 다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시 폭우를 뚫고 방배역 근처에 파스타 집에 가서 얘기를 나눴다.



후배 B : 근데 주임님, 저 이런 레스토랑 처음 와봐요! 너무 좋네요


: 아 그래? B를 데려올 수 있어서 내가 영광이네?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꺼냈다.


후배 B : 저 퇴사 의사 밝히고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어요. 제가 퇴사를 하는 게 팀원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 그랬구나……… B가…… 왜……… 미안해, 미안해 할거 없어…


후배 B : 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는데, 제가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사실 후배 B는 고등학생 때 재경관리사를 취득할 만큼 똑똑한 친구이고, 성적도 굉장히 좋은 친구였다. 그래서 그 두 친구 중에 더 난도가 높은 업무를 맡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일들이 그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었고, 사실 그 일이 너무 과한 일이었다면, 그 주임과 다른 파견직 직원이 함께 나눴어야 했다. 그리고 업무를 분담하는 일은 팀장이 나서 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른 실무자들은 오히려 그 친구를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직원으로 몰아갔다.


: 그건 네가 미안해할게 아니야. 지금 상황을 뻔히 알면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컨트롤하지 못하는 팀장님이 무능력한 거야. 자책하지 마. 네 잘못 아니야. 그리고 미안해하지 마. 나머지 일은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야. 그건 그들에게 맡기자.


미안해서 회사에 남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전할 수 없는 후배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친구는 앞으로 8월 15일에 있을 금융 공기업 필기시험을 준비할 거라고 했다. 19살 때 이미 400명이 시험을 봤는데 20등 안에 들어서 그 금융 공기업 필기에 붙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똑똑하고 밝은 후배 B가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 예쁨 받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철을 타고 1시간 30분을 가야 집에 겨우 도착하는 후배는 집에 가는 길에 카톡을 보냈다.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후배는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


나는 벙찐 느낌이었다.... 이렇게 밥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는 친구였는데...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을 후배를 생각하니 마음이 찌르르했다.


내 생각만 하다가... 다른 이들도 힘들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점심 한번, 또는 저녁 한번 먹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그동안 그 일을 못해줬나 싶었다.


그리고 후배 B는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얘기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친구가 조금은 마음이 조그이나마 치유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후배 B야, 금융공기업 가면 나 랍스터 사준다는 말...나 다 기억해........


근데 있잖아, 랍스터는 내가 사 줄 테니

너는 그냥 붙기만 해............ ㅎ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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