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왕이 너무 싫어
퇴사를 결심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린 건 같이 일하고 있는 A주임님이다.
1년 전에 경력직으로 입사를 했고, 경력으로 보자면 나보다 한 1년 정도 선배다.
처음에는 업무 영역이 겹치지 않아 A주임님과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었다. 나도 그냥 그 주임님이 딱히 궁금하지 않았고, 주임님도 나를 돌아볼 만큼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그는 회색 배경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팀원들이 자꾸 줄어들면서 조금씩 업무 영역이 겹치기도 하고, 내가 A주임님의 일을 도와야 할 때도 있고, 주임님이 내 일을 도와야 할 일들도 생겼다. 회색 배경 같던 그가 업무를 같이 하면서 보니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주임님의 가장 큰 장점은 본인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도와달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넓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A주임님은 본부장님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본부장님 앞에서 팀장님과 A주임님이 혼나고 있는 투샷이 오늘의 그림인지 어제의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팀장님도 커버를 못해주는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겠지만, 그 주임님이 하는 업무 자체를 그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문제였다. 그런데 기존의 업무들이 엉망으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경력직으로 입사하니 회사의 히스토리들을 다 알 수 없었고, 중간에 업무 가이드를 줄 수 있는 중간관리자가 없어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그런 상황을 A주임님이 참 힘들어했다. 아니,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아마 일주일도 못 버텼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 그와 둘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지막이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서 복용하고 있고, 가끔 수면제도 먹는다고 했다.
나는 조금은 충격받았지만,
‘아… 그렇군요…’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하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한 달 정도가 더 흘렀다.
A주임 말고 또 하나의 주임이 있다.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가 싫은 이유는 그는 액션왕이기 때문이다. 뭐든 다 아는 척하고 과한 액션을 먼저 취하는 그가 나는 아주 꼴 보기가 싫다. 그는 사원 때부터 거들먹거리기 일수였고, 자기보다 후배면 무조건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본인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을 뭉개려고 하는 그 태도가 나는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A주임의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시간이 되었는데도 그가 안보였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팀장님이 A주임이 반반 차로 조금 늦게 온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11시쯤에 나타났다. 그는 조금 잠에 덜 깬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어젯밤 수면제를 2알 먹고 자서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보다가 팀장님은 오늘은 그냥 먼저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를 했고, 그는 그렇게 조금 이른 퇴근을 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이 있었으니 우리 팀 사람들은 A주임이 수면제를 복용한다는 걸 다 알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A주임 개인의 프라이버시이고, 그걸 지켜주는 게 동료의 역할이자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하고 업무을 하다가 프린트를 하러 갔는데, 거기 액션왕이 있었다. 액션왕은 이전에 인사팀에 있다가 재무팀으로 이동한 과장님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액션왕 : 가끔 수면제 먹고 있었나 봐요.
L과장: 많이 힘든가 보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목적어를 듣지 못했지만, 그 대화의 주인공이 A주임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얘기를 타 부서 사람한테 옮기고 있는 건가?
지금 내가 들은 게 정령 맞나?????????????
아니, 인사정보를 가장 민감하게 다루는 인사팀 직원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가볍게 개인의 일을 다른 사람들한테 막 얘기하고 다닌다고????
진짜, 너야말로 인사팀 자격이 있니?
매일매일 혼나야 될 사람은 너 같은
사람 아니니??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인사정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게 정말 할 행동이니?
나는 사실 그 순간 너무 화가 났다. 화가 나서 말도 안 나왔다. 근데 내가 말을 꺼내면 그와는 싸움밖에 안될 것 같아서 말도 못 꺼냈다. 그 얘기가 L과장에게 가는 순간 L과장에게 그냥 가십밖에 안된다. L과장에게 그 얘기를 지켜줄 이유가 없으니까, 그 얘기는 일파만파 퍼져가겠지.
아니. 꼭 인사팀이 아니더라도 같은 팀원을 지켜주는 건 정말 가장 기본적인 거 아닌가.
정말 없던 정나미마저 다 떨어졌다.
내가 그 액션왕이라 싸웠다 한들 그의 그 나풀거리는 입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는 언제든 또 본인의 구미를 당기는 얘기를 알게 되면 나풀대며 말하고 다닐게 뻔하다. 그리고 다 아는척하고 다니겠지 또…
그날 집에 가는 길에 A주임님에게 전화를 했다.
나: 주임님, 집에 잘 들어갔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
A주임 : 아 네 이제 좀 나아졌어요. 무슨 일이에요?
나 : 아………………나 사실 너무 짜증 나서…………
A주임 : 왜요?
나 : 주임님이나 나나 스스로를 잘 지켜야 할 것 같아요. 같은 팀원이라는 사람도 주임님을 안 지키더라고. 주임님 그런 얘기하고 다니지 마요. 나는 주임님 얘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싫어.
A주임: 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요. 내가 조심해야지. 고마워요.
나의 최선이 주임님한테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자는 그 얘기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참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최선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나 스스로는
내가 지키는 수밖에.
액션왕들이 득실거리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가 나나 스스로가 더 단단해져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