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힘든건가...
코로나는 나의 생활습관과 생활 반경뿐만 아니라, 나의 업무까지도 침범했다.
코로나 재확산 방지를 위해서 우리 회사는 전면 재택근무라는 파격적인 근무 형태를 선택했다.
코로나를 그냥 단지 위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멘텀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나도 멋진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 변화를 이끄는 사람의 몇 배의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 미친 듯이 발장구를 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수면 아래에서 미친듯이 재택 근무율을 집계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고, 또 우리 회사의
2000명이 넘는 전직원이 지금 현장 근무인지, 사내 근무인지, 재택근무인지를 확인하고 집계하는 사람이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재택근무를 집계하다 보니
재택근무의 폐해가 뿌렷하게 느껴졌다.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 시 메신저에 15분 내 회신 원칙을 지켜야만 한다. 바로바로 회신을 해야만 하고 끊임없이 조직장이 메신저로 업무를 확인하면서 업무의 집중도는 떨어졌다. A 일을 하고 있으면 아까 끝난 B 업무에 대해서 메신저로 물으셨다. A 일을 끝내고 C일로 넘어가면 이제는 A 일을 물으셨다.
아 미치겠네.
요즘 나의 업무 루틴은 출근을 하고 화상 회의 시스템에 출근 보고를 하고 15분 동안 팀 화상 회의를 한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재택근무 집계가 시작된다. 매일 그다음 날의 근무현황을 집계하는 것이다. 시스템에서 휴가, 교육, 출장, 휴직과 같은 근태와 관련된 데이터를 산출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각 사별로 집계를 한다. 그리고 재택근무 상신된 데이터를 뽑아서 백데이터를 만든다. 나는 지주사에 있기 때문에 각 사업회사들의 특별한 이슈와 필수근무자들의 데이터를 쫙~~~~ 받아서 그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면 간단해 보이는데, 내가 느끼기엔 이건 정말 2000개의 퍼즐을 맞추는 굉장히 복잡하고 비싼 삽질이다. 이 숫자들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하는지 잘 알지 못하자 나는 사실 동력을 잃었다. 이 숫자들을 반나절 동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시스템에 유연근무를 상신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상신 독려 메일을 보내는 날이면 메신저와 메일 폭탄을 맞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오늘 일이 터졌다.
어제 내가 휴가자들을 엑셀 데이터로 산출해서 피벗을 돌리는데………… 거기서 실수를 했다. 인원수를 카운팅 해야 되는데 일수를 카운팅 하면서 숫자가 틀어졌다. 나는 그걸 모르고 자료를 사업회사에 넘겼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사업회사 실장님이 보시고 이상하다 생각하셨고, 그쪽 실무자와 얘기를 하다가 내 실수를 발견하고 수정해서 데이터를 다시 보냈다. 그런데 그 실장님이 우리 본부장님한테 얘기를 하고 본부장님이 팀장한테 얘기를 하고……… 팀장은 다시 나에게…………메신저를 보내셨다.
팀장 : 제이 주임, 근데 그 데이터 그게 무슨 소리야?
나 : 아, 팀장님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했어요. 죄송합니다.
팀장 : 그거 그냥 기계적으로 하면 되지 않아?
좀………… 잘 좀 해줘…………실수 발생하지 않게
그때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팀장님이 계속 불쑥불쑥 메신저만 안 하시면 훨씬 나아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난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팀장님이 나보다 100배 힘든 걸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나도 불쑥불쑥 화가 난다.
내일이면 가치 없어지는 데이터를 뽑고 있는 상황도 싫고, 우아한 백조를 떠받치고 있는 내 상황도 싫었다.
이렇게 실수를 만든 나도 싫었고, 계속 데이터 다 됐냐고 묻는 조직장도 싫었다.
5개월 동안 벌써 5명이 퇴사를 했다. 그리고 10월에 두 명이 퇴사를 할 예정이다.
그중 한 명이 나다. 이미 조직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족한 인력의 업무를 남아있는 인력에게 쑤셔넣고 있었다.
이곳이 싫어서 나가는 것보다는 내 적성에 조금 더 잘 맞는 내 일을 찾아가는건데,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몸담은 이 회사가 조금은 덜 싫었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가 3년 동안 많이 배웠고, 즐겁게 일했던 곳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사직원을 올릴 때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설문의 내용은 퇴사를 하는 사유와 이 조직의 장단점 등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있었다.
앞으로 회사가 어떠한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답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나가도 또 다른 누군가가 퍼즐을 맞추느라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