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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30. 2020

4. 누구에게나 '욱' 버튼이 있다.


설 연휴를 맞아, 부모님 집에 갔다. 우리 귀염둥이 강아지도 날 반겨주고, 세뱃돈도 듬뿍 받아 기분이 무지 좋았다. (부모님께 설 용돈으로 50만원을 드렸는데, 세뱃돈으로.. 60만원을 받았다... 31살 먹은 딸내미 세뱃돈도 챙겨주시니 좀 낯부끄러웠지만 용돈 받는 즐거움은 나를 춤추게 만들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룰루랄라 뜨거운 물에 샤워도 하고 엄마의 화장대에서 엄마의 비싼 화장품을 듬뿍듬뿍 바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 너는 항상 화장품을 쓰고, 화장대의 끄트머리에 놓더라. 그러면 화장품이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화장대도 어지러워 보이니까 화장품은 쓰고 나면 안쪽으로 밀어 넣고 정리를 좀 해"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말은 100번 맞았다. 엄마의 화장대를 쓰는 주제에 화장대를 어지럽히는 건 안될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나의 '욱'버튼을 눌러버렸다. 


"아, 내 맘대로 할 거야. 왜 그런 것까지 터치해........"


엄마의 말은 왠지 모르게 사소한 나의 행동들까지 통제하려 드는 것처럼 느껴지고, 반항감을 확 불러일으켰다. 영화에서 보면 폭탄을 터트리거나, 미사일을 쏘아 올릴 때 누르는 버튼 있지 않은가. 그 버튼은 눌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 영화 속에서는 폭탁은 뻥하고 터지고, 미사일은 하늘을 뚫고 날아간다. 그리고 나의 버튼이 눌리는 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고, 반항심이 솟아나 차가운 말이 나갔다.


"너는 엄마가 너 좋은 습관 들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돼?"


금방 전까지도 살갑던 딸이 갑자기 맘대로 한다는 말에 엄마도 그 순간 화가 나서 그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나의 차가워졌던 감정은 더 얼어붙어 엄마랑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쌩하니 안방을 나와 버렸다. 


원래는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감정은 상해버렸고 되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쌩하고 들어간 작은 방에 와서 잠깐 책을 읽으니... 그 불쑥하고 튀어나왔던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가만히 저의 그 '욱'했던 감정을 돌이켜 봤다...


사소한 행동에 지적받는 게 나의 버튼인 것 같았다.


"너는 여자애가 왜 그렇게 앉아 있니?"

"머리를 좀 빗을 수 없어?"

"좀 예쁘게 걸을 수 없어?"

"밥 먹었으면 바로 설거지를 해야지"


생각해 보면 이런 말들은 나의 버튼을 항상 눌르고 있었다. 아마 이런 성격을 내가 어렴풋하게나마 알기 때문에 남들은 굳이 독립해야 되나... 하는 상황에서 독립해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지적이나 통제받는 게 힘들고, 자꾸 부정적인 감정이 불쑥하고 튀어나오다 보니 그걸 나도 겪어 내는게 힘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화를 잘 안내는 사람도 만나고, 정말 다혈질인 사람도 만난다.

내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이 버튼은 있는데, 그게 많냐 적냐, 그 개수의 차이인 것 같다. 화를 웬만해서 잘 안내는 사람은 그 버튼이 많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도 버튼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화를 잘 안내는 그도 그 버튼이 눌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아마 주변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다혈질인 사람은 반대로 그 버튼이 많은 사람이니 상대적으로 그 버튼이 눌리는 상황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버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버튼을 없애는 건 힘들다. 이 버튼은 살아오면서 오랜 기간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격지심이 발동하는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버튼의 정체를 빨리 알아내야 한다. 내가 언제 기분이 나빠지고, 어떤 상황에서 이 버튼이 작동하는지 알면 내가 조심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도 이 버튼의 정체를 알릴 수 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그 버튼을 무심결에 누르는 걸 피해 갈 수 있다. 


'뭐 저런 걸 가지고 화를 내? 유별나네.. 저 사람은 다혈질인가 봐'


버튼을 찾으면 이런 상황을 줄일 수 있다. 원래 나는 그런 상황에서 화가 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가 알고, 주변 지인들이 알면 말이다. 선천적으로 예민하게 타고난 저는 버튼이 좀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나도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아직도 계속해서 이 버튼의 정체를 밝혀가고 있다. 알아야 피해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예민한 성격을 탓하기보다는, 알아가고 찾아가고 적응해 가고 있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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