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룰이 있는 법
운동은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중학생 때 계속 체육부장을 했고 체육대회 때 줄넘기 선수, 놋다리밟기 선수를 뽑을 때면 내 이름은 항상 1번으로 나왔다.
고등학생 때는 반 대표로 육상을 나가기도 했고, 웨이트를 할 때면 체구는 작은 편이었지만, PT쌤들이 몸을 쓸 줄 안다고 항상 칭찬을 해주셨다.
배워본 운동도 꽤나 많다.
요가, 필라테스, 탁구, 수영, 격투기, 합기도, 댄스 등등 나에게 기회가 왔을 때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운동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운동부심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나 보다.
계속되는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답답한 마음에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12월에 바디프로필을 준비해면서 한창 웨이트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어느새 루즈해져, 신나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집 앞에 태권도장이 있어서 큰 마음먹고 전화를 걸었다.
"성인반 비용 문의드릴려구요~"
"아, 네네 한번 오셔서 체험수업 참여해보세요. 그리고 비용 설명해 드릴게요."
체험수업을 가서 나는 태권도에 빠져버렸다. 운동도 운동이었는데, 사범님의 칭찬이 또 듣고 싶어 태권도에 나가기로 했다.
얼굴천재인 사범님은... 태권도를 처음 접한 나에게 칭찬을 마구마구 퍼부어주셨다.
"와, 태권도 정말 처음하는거 맞으세요?"
"운동 천재 같은데요?"
"앞으로가 너무너무 기대돼요!"
분명 100% 빈말은 아니셨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하는 사범님만의 당근이었고, 성인이 흰띠를 매고 운동을 시작하는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셨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태권도를 엄청나게 잘하는 줄 알았다.
더군다나 20년 전........... 합기도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조금만 열심히 하면 금방 잘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안이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룰이 있는건데....
내가 무술을 쉰 20년 동안 사람들은 계속 훈련하고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 갭을 나는 완전히 무시했다.
웨이트와 같은 다른 운동을 하면서 내 몸에 베인 습관들이 있는데, 태권도 할 때도 그런 습관들이 고스란히 나왔다. 그러나 어떤 습관들은 태권도에서 추구하는 자세와는 완전 달랐다.
내가 기존에 가진 모든 습관들을 버리고, 새로운 자세, 새로운 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태권도를 시작한지 3주만에 깨달았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늦게도 깨달은거지.
오늘 체험 수업때 나에게 칭찬을 마구마구 퍼부어주셨던 사범님께서 품새의 자세를 하나하나 잡아주는데....
아.............뭐지............. 이 벙찐 느낌.
손가락은 부러지지 않게 살짝 구부려야 하고,
앞서기를 할 때면 몸을 완벽하게 틀어서 정확하게 정면을 바라봐야하고
암막기를 할 때면 앞서기를 해야하고
예비동작을 정확하게 해야하고
뒷서기를 할 때면 앞발을 완벽하게 펴면 안되고.............. 등등등
뭐지........여기 룰을 전혀 모르잖아?
나는 그야말로 흰띠가 가장 잘 어울리는 초보였는데
앞서기, 뒷서기 조차 모르면서, 언제 블랙벨트를 딸 수 있는걸까 두근두근하며 기대하고 있었다.
뭔가를 시작할 때, '아~ 나 이거 해봤어' 하고 어설프게 접근하는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정말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나 이 업무 전에 해봤어, 이렇게 이렇게 대충하면 되겠는데?'
'아~ 나 이런 성격의 사람 겪어 본적 있어, 이 사람도 대충 비슷하겠지.'
'이 운동은 대충 이렇게 하면 되는거 아니겠어?'
업무든 관계든 운동이든 다 똑같은 걸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걸 시작할때는 새로운 마음가짐과 초심자의 태도로 겸손하게 접근해야 했다.
태권도를 하면서 몸만 단련한게 아니라,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그런 값진 하루였다.
내일도 흰띠매고 흰띠의 마음가짐으로 겸손하게 운동해야지.
오 내일 태권도 갈 생각에 살짝 설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