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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Sep 04. 2020

I can’t breathe!

남쪽에 있는 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열렸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가 매달린 채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
- Billie Holiday's song, <Strange Fruit>​


1930년대 말 백인 여러 명이 한 흑인 청년을 집단 구타한 뒤 나무에 목매달았다. 이 사건을 목도한 루이스 알렌은 분노를 담아 시를 쓰고 곡을 붙였다. 그 노래는 1939년에 빌리 홀리데이가 부르면서 알려졌다. 바로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흑인 시체에 관한 노래다.


그녀의 처연하고 권태로운 보이스는 듣는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노예로 끌려와 도시 빈민이 된 흑인들은 혹독한 인종차별과 가난, 생의 의지 혹은 체념의 감수성을 노래에 실었다.


차별당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그것은 차별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아픔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어서,
그 뒤에는 개별적인 상처 자국이 남아.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오늘날 모든 인간은 법률적으로 평등하나 여전히 사회적·관습적 인종차별은 심각하다. 인종적 거주지 분리도 확연하다. 인종별 직업의 역할분담도 철저하다. 보이지 않는 소수 차별의 메커니즘 속에서 백인은 분명 유색인종에 비해 상대적인 특권을 누린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많은 지역의 범죄율이 높다. 사회적 소외라는 악순환을 통해 부모세대의 가난이 그대로 대물림되고 악순환하며 세대를 이어 상속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그런 양상들은 어쩌면 곪아 터진 그들의 상처고 분노다.


미국에 사는 다양한 인종들은 서로 동화되지 못한 채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미국처럼 넓고 자유로운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에서 각기 다른 인종끼리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끼리끼리 살아가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순종·청결·순수 따위를 향한 열망이 있나 보다. 그러나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는 사실상 그 사회의 억압성을 드러낸다. 장애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거리는 그 사회의 윤리적 타락, 폭력적 무관심을 드러낸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 토머스 홉스, <시민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순종주의는 성, 계급, 인종과 같은 거시적인 범주로부터 학연, 지연, 인연이라는 미시적인 범주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면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억압 구조를 작동시키고 있다.” 순종주의는 강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에서 나아가 약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을 먹이사슬로써 구조화한다.


자유의 옹호자들은 그런 풍경들 앞에서 불편하다. 더 나아가 위기를 감지한다. 다양성은 자유의 핵심적 징표이기 때문이다. 담배꽁초에서 유색인종·혼혈인에 이르는 ‘이물질’을 완전히 솎아내 거리가 마침내 청결과 순수를 달성했을 때, 그 사회는 전체주의라는 광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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