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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Apr 30. 2019

<북극의 나누크>(1922)


<북극의 나누크>는 기록영화의 시초가 되는 작품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 서서 각각의 장점만을 적당히 취한 영화다. 처음 이 영화를 만났을 때 영화의 모든 시퀀스들이 대체로 깔끔하고 완벽하게 재단되어있음에 놀랐다. 1922년-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영화의 편집 기술이 제로에 가깝던 시절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북극의 나누크>는 100년의 영화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경이로운 고전이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북극의 나누크>은 대체로 단순 기록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특별하거나 뛰어난 미장센을 자랑하는 부분은 없었지만, 유독 엔딩 시퀀스만은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잊히지 않는다. 영화 내에서 대놓고 작위적임을 표방하는 이 장면은 <북극의 나누크>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눈 속에 파묻혀 잠(혹은 죽음)을 청하는 에스키모인 나누크 가족이 대자연으로 회귀하는 듯한 판타지의 감수성이 물씬 드러나는 장면. <북극의 나누크>는 에스키모인들의 삶을 그야말로 '종결'지으면서 막을 내리는데, 이 마지막 장면에서 에스키모에 대한 환상과 동경이 자신의 영화로 인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플래허티 감독의 염원과 당시 서구권 감독들의 원주민들(아시아인)에 대한 시선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제3세계의 생경함,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신비와 경이로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수식하는 영화 속 배경인 '북극'의 모습들. 영화 속 주인공인 '나누크'에 대한 관객들의 환상은 이 엔딩 시퀀스로 인해 발화된다. 다큐멘터리를 대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사명감과 죄책감 등의 단편적이고 본능적인 감정들, 그것이 <북극의 나누크>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유한 영화적 경험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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