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가득한 집

9와 숫자들 '아카시아 꽃' 노래 소설

by 강민영

아이들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운동장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원을 그리듯 뛰어다니고 있을 때 나는 그 운동장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원래는 체육시간 겸 놀이시간으로 편성되어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나는 달리고 싶지 않은 데다가 달리기만 생각하면 실제로도 배 안쪽 어딘가가 조이듯 아파오는 느낌이 들어 담당 선생님에게 달리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담당 선생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에게 운동장의 작은 구석에서 머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달리기를 자주 빠지곤 했는데, 그렇게 특별한 일 없이 체육활동을 빠질 수 있던 이유는 내가 이 학원 부원장의 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나만의 특권을 만끽하며 운동장 구석에서 흙과 풀을 만지고 있는 동안, 윤기는 항상 내가 머물고 있는 구석까지 바람을 일으키며 전력질주를 하거나 볼을 차며 다가오곤 했다. 그 아이는 작은 운동장 모든 곳을 누리며 운동장이 마치 자신의 개인 연습실이라도 되는 양 사용하곤 했는데 나는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사색을 방해하는 윤기를 늘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곤 했다. 그게 내가 윤기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이다.


윤기와 내가 다녔던 ‘행복이 가득한 집’은 네모난 하얀 간판에 무지개 색 글자로 색칠되어 있는 미술학원 겸 유치원이었다. 한글이나 영어, 산수와 같은 간단한 수업들이 체육과 미술과 같은 예체능의 시간과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이 ‘행복이 가득한 집’을 유치원이라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았고 나는 이 학원을 그저 놀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며 다녔다. 막내 이모가 원장이고 엄마가 부원장이었던 덕분에 수업에 대한 호불호를 분명하게 드러내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당시 작가나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엄마를 졸라 책을 매주 한 다발씩 사거나 주말이면 미술관을 가자고 조르곤 했고, 20년쯤 뒤엔 유명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름의 재능도 있었기에 모든 미술수업에서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의기양양해있던 나는, 윤기가 학원에 입학한 후 어쩌면 화가나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난생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다. 윤기는 특히 미술과 체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원내 미술대회에서 줄곧 1등을 차지하고 있던 나를 최초로 2등 자리에 머물게 한 아이였다. 운동장에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일사불란하게 내 시야를 헤집어 놓던 그 남자아이가 윤기였고, 그 부산스럽고 날쌔게 움직이는 윤기의 몸이 미술시간과 독서시간에 책상에 올곧게 붙어 자신의 창작물에 집중하는 모습에 나는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유희는 미술을 정말 잘하네’라는 어른들의 말이 ‘윤기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구나’로 바뀌는 순간부터 나는 윤기를 온 마음을 다해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약 한 달 정도 나는 윤기를 늘 곁눈질로 바라보며 윤기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 핀잔을 주고 딴지를 걸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들의 기저에는 윤기가 나보다 1살이나 어리며, 내가 윤기보다 1살이나 누나라는 사실이 지배적으로 깔려 있었다. 윤기가 실수로 도시락 통을 열다가 국물을 쏟거나 반찬을 뒤집어 놓아 케첩이나 고추장 등이 윤기의 옷에 묻는 걸 바라보며, “그것도 못하니, 넌 역시 어리구나. 이래서 6살은 안 돼.”라며 어깨를 으쓱거리곤 했고, 어쩌다 한 번씩 윤기가 책을 읽을 때 사레가 들리거나 색연필 등의 준비물을 깜박하면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윤기는 정말 멍청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윤기는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이는 동시에 씩 웃음을 보였고 그런 넉살 좋은 윤기를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방실방실 웃는 윤기의 얼굴을 더 깊게 흘겨보거나 째려보곤 했다. 윤기를 쫓거나 윤기를 피해 다니며, 나는 7살의 봄과 여름을 소비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 즈음의 가을이 되자 담당 선생님은 축소해서 운영했던 체육시간을 좀 더 늘리기 시작했고 매서운 겨울이 곧 시작되기 전에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는 듯 수많은 아이들이 일제히 그 결정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나는 주기적으로 체육시간을 홀로 보내곤 했으며 여름보단 얕아졌지만 여전히 미세하게 윤기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 선생님은 원내에 정글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운동장 구석에 정글짐 공사를 시작했고, 나는 거의 내 공간처럼 사용하던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밀려나 그곳에 정글짐이 세워지고 닦아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정글짐 공사는 색칠이 모조리 끝나기까지 2개월이 넘게 걸렸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그쪽으로 함부로 가지 못하게 항상 주의를 주었으며 나는 내 사유지를 빼앗긴 심정으로 매일 저녁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었고, 그 정글짐이 완공되기를 어느 순간부터 간절하게 바라기 시작했다. 정글짐이 완공을 앞두고 있던 주는 막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겨울로 접어들기 직전이었고, 나는 학원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얼마간 그 정글짐 앞에 앉아 오래도록 무지개 색으로 칠해진 정글짐의 뼈대들을 바라보곤 했다.


정글짐이 완공되고 본격적으로 선생님의 사용 허가가 나기 직전이었던 주말 아침, 원장 선생님인 막내 이모와 부원장 선생님인 엄마는 선생님들을 소집하여 겨울방학을 앞두고 각 담당반의 평가회의를 했다. 엄마는 나를 원내 놀이방까지 데려다주며 ‘여기서 조금만 놀고 있어’라는 당부를 붙인 후 업무를 보러 갔었고, 놀이방에서 몇 시간을 머물기엔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조심조심 밖으로 나가 작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글짐 앞에 멈췄다. 정글짐 공사를 하던 아저씨들도 벌써 며칠 째 보이지 않고 있었고 손으로 몇 번 툭툭 건드려보아 내가 올라가도 될 만큼 튼튼하게 지어진 것 같다고 판단한 나는, 5층짜리 정글짐을 1층에서부터 조심조심 딛고 올라가 꼭대기로 향했다. 멀리서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이만큼 높은 무언가를 어른의 도움 없이 올라간 경험이 없던 나는 정글짐 1층과 2층 사이에서 허공에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크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때 팔과 등 일부분을 부딪히며 느껴진 진동과 순간적인 긴장감으로 인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엄마가 알게 되면 몹시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과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휩싸여 눈에 눈물이 고이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려던 순간, 시야에 익숙한 운동화 두 개가 나란히 들어왔다. 내가 두 계절을 내내 째려보며 얼굴을 찡그리던 그 운동화, 윤기의 운동화였다.


“누나 괜찮아? 내 손 잡아 일어나 봐. 얼른.”


패닉에 빠져 있던 나의 감정과 다르게 윤기의 음성은 차분했고 몹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윤기가 어째서 주말 그 시간에 원내 운동장에 나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으니 그 상황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태도로 간절하게 윤기의 손을 잡았다. 익숙하게 나를 일으켜 준 윤기에게선 그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윤기를 놀렸던 것처럼 윤기도 나를 얼마든지 놀릴 수 있었을 텐데, 선생님이 가지 말라던 정글짐에 몰래 올라간 것, 그 정글짐을 다 오르지 못하고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 넘어지고 나서도 일어나지 못해 바닥에서 울고 있었던 것, 그 모든 것을 수개월의 놀림거리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윤기는 그럴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눈썹을 찡그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등을 다독이는 윤기를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원래 정글짐은 응, 이렇게 미끄러운 신발 안 돼. 나처럼 이런 운동화 신고 흙도 털고 해야 잘 올라갈 수 있어. 누나가 신고 있는 신발로는 저—기 까지 올라가기 힘들어.”


윤기는 손가락으로 정글짐의 맨 위칸과 나의 신발을 번갈아 가리키며 씩 웃었다.


“그래도 중간까지는 올라갈 수 있겠다.”


윤기는 말을 마치자마자 정글짐 두 번째 층으로 훌쩍 올라가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윤기의 손을 잡았고 윤기는 능숙하게 한 손은 정글짐의 쇠막대를 잡고 한 손은 나를 붙잡은 채 정글짐의 세 번째 층까지 올라갔다. 정글짐에서는 원래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앉는 것이라고 윤기는 그 이후에 나에게 정글짐에 대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으나 그에 대한 기억은 없고, 나에게 그날의 마지막 기억은 내 왼쪽 손에서 나던 비릿한 쇠 냄새와 조금 까져 피가 흐르던 왼쪽 무릎 언저리였다. 정글짐에서 내려와 윤기와 헤어진 후 집에 돌아가 엄마의 꾸지람을 들으며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왼손에 남아있던 짙은 철 냄새를 킁킁 거리며 맡았다.


그 뒤로 학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간의 겨울방학을 시작했다. 말이 겨울방학이지 부모들은 아이들을 계속 학원에 보내서 놀며 공부하는 것을 바라고 있었기에, 겨울방학 와중에도 학원에 틈틈이 얼굴을 비치는 아이들이 제법 많았고 윤기와 나도 거기에 속해 있었다. 정글짐에서 굴러 떨어진 이후 바뀐 것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윤기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와는 반대로 윤기를 쫓아다니다 못해 윤기와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할 정도로 윤기를 따랐다는 것이다. 아주 추운 일주일을 제외하고 이듬해 봄까지 나는 윤기를 보러 가기 위해 학원에 다녔다. 매일 학원 내에서 아이들이 놀리거나 말거나 나는 윤기의 손을 꼭 붙들고 다녔고, 각종 수업이나 행사에서도 윤기를 위한 옆자리를 만들어 두고 그 자리를 넘보는 아이들을 쏘아보았다. 어쩌다 아이들이 심술궂게 우리를 둘러싸고 “유희는 윤기를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하고 놀리는 날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기는 나의 괴롭힘을 고스란히 받아 내었을 때처럼 나의 관심과 집착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 주는 듯 보였고, 곤란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씩 웃음을 짓는 윤기를 보며 나는 더욱더 소중하게 윤기의 손을 잡고 달렸다. 저녁마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나는 윤기랑 결혼할 거야’라는 포부를 보였고, 학원 선생님 모두가 내가 윤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 선생님들 대부분은 흐뭇한 얼굴로 윤기와 나를 바라보았다. 윤기도 나를 좋아했는지 어쨌는지는 당시의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윤기가 없으면 죽을 것 같고, 하루라도 윤기를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던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되자 나는 8살이 되었으며 학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원 졸업식 날까지 윤기의 손을 꼭 잡으며 펑펑 울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더욱 넓은 운동장에서 더욱 높은 정글짐과 훨씬 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팔려 윤기를 곧 잊었다. ‘행복이 가득한 집’ 원생들은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졸업하고 나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 뒤로 간헐적으로 윤기를 생각하던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7살 그 해의 겨울만큼 윤기를 간절히 생각했던 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으며 나는 윤기보다 간절한 다른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 섞여 윤기라는 존재를 곧 일상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나에게 윤기는 없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 윤기 기억나? 왜 내가 옛날에 엄청 좋아했던.”

“윤기? 이윤기? 어떻게 기억이 안 나겠니, 걔가. 네가 걔 엄청 좋아해서 아주 그냥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손을 잡고 학원 여기저기 뛰어다녔잖아.”


무심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자리를 고쳐 앉고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윤기, 걔 미술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고 붙임성도 좋았던 애였는데. 너보다 한 살 아래였지 아마? 네가 그렇-게 쫓아다녀가지고 내가 얼마나 윤기한테 미안하고 고마웠던지. 너도 걔 기억나지? 윤기 준수하게 잘 생겼었잖아.”


나는 엄마를 호들갑을 떠는 엄마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지? 나 예전에 윤기 정말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럼, 네가 아주 죽고 못 살았지. 왜, 윤기한테 연락 왔어? 잘 살고 있대니 걔는?”


엄마의 시선은 멀찌감치서 내가 들고 있는 핸드폰에 꽂혔다. 나는 핸드폰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고 이전에 윤기가 나에게 웃어주었던 예의 그 웃음을 지으며 방 안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았다. 그래, 나는 정말 윤기를 좋아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윤기를 잊은 채 살고 있었지만 엄마는 그때의 나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놀라웠다. 엄마가 궁금해하던 내 핸드폰 화면은 절전모드에 들어간 채 부고 메시지를 깜박이고 있었다. 정글짐에서 엎어졌을 때 이런 기분이 들었던가. 나는 이럴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그저 방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거실에서 희미하게 윤기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그 애는 잘 살고 있을 거야. 분명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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