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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un 12. 2019

오늘 같은 날

9와 숫자들 '산타클로스' 노래 소설

이런 날이 있지,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웠던 ‘하늘색’이란 그 단어가 제 구실을 한다고 생각되는, 이런 날이 말이야. 예전에는 딱 요맘때의 계절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날씨였는데 몇 년 전부턴가 봄의 한철에도 한여름의 밤에도 좀처럼 저런 하늘을 마주하기가 어려워졌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만나기 힘들어지는 저런 귀한 하늘이다 보니 사람들은 이런 날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게 되었어. 출근길에 졸리고 피곤해도 하늘을 바라보며 날이 참 좋네, 퇴근 후에 술 한잔의 약속을 가며 오늘 날이 죽인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엉엉 울다가도 하늘을 보며 그래도 하늘은 참 예쁘네 라는 말을 늘어놓게 되었어. 이런 날을 마주하면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 그것이 이런 귀한 날을 맞는 태도의 정석이라는 듯. 두 손을 곱게 모으고 품 속에 꼭 잡고 있던 카메라를 열어서 찰칵, 띠링, 혹은 무음의 조리개를 열고 닫으며 경건하게 하늘을 찍어내며 감탄하는, 그런 날이지. 저마다의 카메라 앨범 속엔 파랑과 하양의 대비, 핑크와 주홍빛 무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하늘의 다양한 모습들이 날짜와 시간의 타이틀을 달고 저장되어 있겠지. 금세 사라져 버릴 순간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은 곧 닥쳐올 미세먼지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저 하늘을 꿈꾸고 칭송하겠지. 이런 날은 나가야 해, 이런 날은 자전거를 타야 해, 한강에 나가자는 많은 약속 속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한껏 축제 분위기에 빠지게 하다니, 맑은 날의 하늘은 참 대단해. 구름이 갈라지는 찰나를 보며 황홀한 눈빛으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꼭 외계인에 홀린 사람들 같아. 어쩜 이런 맑은 날 하나로 저렇게 단단하게 묶일 수 있을까? 무언가 엄청 강력한 주술에 걸린 듯 절대 깨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그러는 나는 어떻냐고? 물론 나도 맑은 날 파란 하늘이 좋지. 저렇게 대지를 가르는 듯 아련한 빛을 뽐내는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아무 방어막 없이 온몸으로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으니까. 고작해야 1년에 몇 번 정도일까? 우리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이번 해에는 반드시 월화수목금 중에 석가탄신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도 간절히 저런 하늘을 기다려. 그런데 있잖아 나는 사실, 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그중에서도 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아. 예쁜 하늘과 찬란한 구름들을 핸드폰에 담기 위해 두 팔을 뻗어 하늘로 향하는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위치한, 너의 뒷모습이 좋아. 너는 네가 어떤 표정으로 이런 날을 마주하는지 잘 모를 거야. 이런 날엔 사람들은 사람보다 하늘을, 셀카보다 배경을 찍곤 하거든. 아무리 예쁘게 보정된 셀카라도 필터 없이 고스란히 담아낸 말끔한 하늘만 못 하지. 근데 말야, 나는 그 하늘을 두 눈과 마음에 온전히 담아내는 너의 얼굴과 몸짓이 저 하늘보다 좋아. 날이 맑은 날에 바깥을 향해 힘차게 호흡을 시작하는 너의 에너지를 너는 모르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짓는 스스로의 표정들을 모르고 살고 있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저 아름다운 하늘과 그 하늘을 바라보는 너의 뒷모습을 함께 담아 액자 같은 곳에 넣어두고 싶다. 자주 오지 않을, 어쩌다 한 번 있을 법한 이 날을 기념하며 눈을 감고 추억할 수 있도록. 언젠가 미세먼지에 뒤덮여 하늘이 제 빛을 잃고 영영 맑은 날을 마주할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런 예쁜 표정을 짓는 너와 우리의 하늘을 기억하며 꿈을 꿀 수 있도록. 


나는 이런 날이 올 때마다 너를 생각해. 너도 그럴 때가 있니?


https://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59213&trackId=346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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