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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14. 2019

고작 1km, 무려 1km

수영에 관하여

아주 어린 시절, 처음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는 물에 뜨는 느낌,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가는 느낌에 집중해서 몇 미터를 수영했고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물속에 머물렀고 등을 신경 쓰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수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수영과 몇 가지 운동을 병행하면서부터 '거리'에 대한 감각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수영하는 나에게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이 아닌 '얼마나 멀리 그리고 빨리'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거리나 속도에 대한 집착이 크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이면 좀 빠르고 효율적으로 운동을 하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수영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물 밖에서의 효율을 물 안에서도 내고 싶어서였다. 이를테면 자전거나 러닝 같이 특정 시간을 놓고 몇 km/h 정도로 달릴 수 있는지를 체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수강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방수가 되는 스마트워치를 사면서부터, 그러니까 수영을 하면서도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이전과 완전 다른 생각으로 수영에 임하게 되었다. 


대회를 준비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입수를 시작으로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수영을 한다면 얼마나 갈 수 있나 궁금했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라고 해봐야 수영은 다른 운동보다 제약이 많고 체온 유지가 잘 되지 않는 운동이다 보니 1시간 이상을 쉼 없이 무리해서 하면 몸살이 나기 십상이기도 하고 보통의 자유 수영장에서는 50분 운동, 10분 휴식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1, 2시간을 내리 수영하기 어렵다. 몸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에 한번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나의 인내심은 1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바다수영이라면 다르겠지만 수영장 내에서 똑같은 레인을 계속 돌고 돌고 또 돌고, 뒷사람과 앞사람에 치여 턴하며 수영하다 보면 1시간 내에 지쳐버린다. 


그런데 1 시간 내지 50분을 내리 수영한다고 하더라도 찍을 수 있는 거리는 1km가 조금 넘는다. 숨을 헐떡이며 목에서 쇠맛이 날 정도로 수영을 해도, 보통의 수영장에서는 1km를 넘기기 어렵다. 일반적인 수영 강습 시간에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500미터 남짓의 거리를 기록하면 많이 움직인 편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회전했는데, 고작 움직인 것은 1km 정도라니. 나는 시계에 기록된 1000m의 숫자를 바라보며 물 밖의 자전거와 러닝을 생각했다. 자전거는 발만 몇 번 굴리면 1km는 고사하고 순식간에 10km를 이동할 수 있으며 러닝은 자전거보단 느리지만 3, 4km를 뛰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자전거와 러닝의 '1km'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고 크게 고민할 여지가 없는, 말하자면 기본값으로 따라오는 당연한 거리였다. 두 운동의 1km란 운동 직전의 예열 시간에도 못 미치는 거리다. 하지만 수영은 그 1km를 버텨내기 위해, 그 1km로 도달하기 위해 물속에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실제로 칼로리나 기타 등등 완벽하게 기록되진 않지만, 그래도 방수 스마트워치는 유용하다.



수영에서의 1km를 도달할 수 있는 페이스는 보통 100미터를 얼마만의 시간에 도달하느냐로 가늠한다. 일반적인 수영장은 25미터 레인으로 되어 있고 50미터 레인이 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에, 25미터 레인에서 이것을 가늠하기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레인이 짧아 앞에 보이는 벽을 향해 나도 모르게 전속력으로 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턴하여 돌아서 50미터를 찍을 즈음에는 지치고 만다. 그렇게 힘을 들여 두 발과 두 손을 움직이는데도, 고작 버둥거리며 간 거리는 50미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어떤 때는 몹시 허탈해진다. 하지만 이 허탈함은 자전거나 러닝에 수영을 비교할 때에야 일어나는 것이고 관점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잘못에서 오는 감정이다. 물 안과 물 밖의 제약 혹은 자유를 체감하지 못한 채 무조건 거리에 비례하여 움직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생각을 가지며 모든 운동에 임하다 보면 쉽게 자만심에 빠지며 때로는 쉽게 지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수영을 할 때는 수영만, 자전거를 탈 때는 자전거만 집중해 생각하기로 하니, 수영장에서의 1km는 금세 '고작'이 아닌 '무려'로 바뀌어 있었다. 이후로는 그 1km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이 남았다. 레인을 빨리 돌아야 할 때는 주로 자유형으로, 그렇지 않아도 될 때는 평영과 접영을 섞기도 하며 이따금 사람이 없을 때는 배영을 하면서 쉬기도 한다. 스마트워치에 기록되는 100m, 250m, 425m의 시간은 차곡차곡 쌓일수록 기분 좋은 일임은 분명하지만, 숫자에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쾌감을 느끼며 한번 운동을 시작하면 '그래도 700미터는 찍고 나가자'는 목표를 세우곤 하지만 '고작 1km밖에'라는 생각을 지우고 나니 훨씬 자유롭게 느껴졌다. 1km, 아니 500미터 차이로 생사를 넘나드는 바다 위에서의 풍랑을 생각하면, 내가 떠 있는 지금 이곳의 수영장은 한없이 평화롭고 아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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