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추천작은, 애플TV에 지난 3월 25일부터 4월 29일까지 순차적으로 시리즈된 장안의 화제 <파친코>. 애초에 이용하고 있는 OTT가 너무 많아 <파친코>가 아무리 궁금하다 한들 모든 회차가 공개되고 난 후에 챙겨보리라 생각했는데, 카카오톡을 이용한 구독 이벤트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처음의 기개는 떨쳐내고 <파친코> 대열에 합류해 4회차부터는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며 시리즈를 챙겨봤다. 애플TV를 계속 구독하지는 않을 예정이니 일단 화제작이자 애플 오리지널 몇 개를 나중에도 추가하려 하는데, 그 첫 번째 타자는 어쩔 수 없이 <파친코>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파친코>의 원작은 문학사상에서 발간되었던 동명 소설 '파친코'로,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파친코>는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그려낸 가족 4세대의 이야기로, 유년기부터 미국에서 성장한 이민진 작가가 다양한 자료 수집과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번에 모두 공개된 <파친코>는 이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2부는 <파친코> 시즌 2를 통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파친코>가 '역사를 소재로 그려냈다'고 이야기하는 건, <파친코>가 한국의 근현대사 혹은 역사 그 자체를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근현대의 사건들, 눅진하고 무겁지만 늘 잊지 않고 살게 되는 그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다시 기억하고 고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리즈가 아니다. 이건 <파친코>의 오프닝 시퀀스와 이어진다. 견뎌내야 하는 지독한 인생을 살고 있는 극중 인물들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어깨를 맞대고 노래를 부른다. 실제로 다루는 <파친코> 내의 사건은 무거움의 연속이지만, 오프닝 시퀀스의 인물들은 세대와 시간에 관계 없이, 갈등과 관계 없이 순간을 즐긴다. 사건의 전개 방식이 원작과 다른 방법으로 전개되는 <파친코>에서, 원작과 가장 강렬하게 맞닿아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소설의 첫 번째 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말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오프닝 시퀀스가 아닐 수 없다.
이와 연관해, <파친코>의 가장 큰 장점은 인물의 묘사다. 원작 소설에서 다소 평면적으로 다뤄지는 몇 인물들의 묘사가 영상에서는 극대화되었는데, 그 대부분을 채우는 건 '젊은 선자' 역을 맡은 배우 김민하의 클로즈업이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두 세대의 '선자' 중 김민하 배우가 이끄는 '젊은 선자'는 <파친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현재를 있게 한 사람이다. <파친코>는 역사를 소재로 한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플래시백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플래시백이 거의 없다시피한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젊은 선자'는 모든 세대의 이야기에 맞물려 인물들 사이의 끈을, 인물 사이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를, 당도한 순간의 재앙과 재난을, 기쁨과 설렘이 뒤섞인 두려움의 감정을, 선자의 클로즈업을 통해 너무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파친코>는 여러 장점이 있는 드라마지만 그중 절반 이상을 김민하 배우의 클로즈업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역할은 실로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 회차는 4화와 7화. 선자가 일본으로 이주하는 배에서 겪는 일에 관한 교차 편집은, <파친코> 모든 회차를 통틀어 압도적인 편집과 연출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더불어 원작 소설에는 없는 한수의 서사를 넣은 7화는, 관동대지진과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이 가볍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가 섞여 있고 한국, 일본, 미국 3개국을 바탕으로 한 각각의 인생이 이어져 있는 드라마인데다가 한국 자본으로 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약탈과 괴롭힘, 한국인의 저항과 관련된 부분이 장면 연출과 자막 설명으로 기록되어 있어 <파친코>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관점에선, 다분히 의의가 있다 할 만하다. 더불어 가장 마지막 회차인 8화에 선자의 서사를 일단락하며 이어지는 재일교포들의 인터뷰 또한 인상적이었다.
<파친코>는 '역사' 자체로 읽히기보다 '인물'을 앞세워야 하는 드라마다. <파친코>는 역사를 소재로 쓰고,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배경으로 사용하며 서사를 이어간다. 하지만 대를 이어 대물림될 것 같던 그 고통에, 끔찍하게 눈 감고 지나가야 하는 그 억겁의 한에 휘말리거나 침잠하지 않고, '현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마주하는 건 인물들의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미래에 대한 소망이 아닌 지금, 현재의 삶. <파친코>는 각각의 인물들이 폭죽처럼 터트리는 현재의 이야기를 잘 아울러 내달리는 웰메이드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