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의 빛

9와 숫자들 '오렌지 카운티' 초단편 노래 소설

by 강민영

집ㅡ에ㅡ가-고-싶ㅡ다-아-아-아ㅡ


라고 난간을 잡고 하늘을 향해 길게 소리 내어 외쳐본다. 반년 동안 콘텐츠사업팀 전원이 매진해 왔던 사업이 드디어 이번 주에 결실을 맺는다. '결실'이라는 단어에는 어폐가 있겠지만 어쨌든 회사 창립 이후 이렇게 까지 많은 사원들의 고정적인 야근 노동력을 갈아 넣은 프로젝트는 없었다고 한다. 한 주만 참고 회사의 역사를 바꿉시다! 박 파트장이 매주 월요일마다 지겹게 하는 그놈의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는 개뿔 집에나 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개월 동안 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끝이 보인다. 두 개의 세부 제안서만 마치고 네 명의 광고주 미팅만 만나면 나의 역할은 끝난다. 그 수 개 월 동안 집에 가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 이라는 공간에서 제대로 쉰 적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걸 집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사직서를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려놓은 것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박 파트장이 새벽녘에 좀비처럼 비척비척 걸어가는 팀원들을 모아놓고 해장국을 시켜며 '내일은 늦게 출근해도 돼, 오후 1시 정도?'라는 되지도 않는 생색을 내는 것도 이제 끝, 하루가 멀다 하고 쌓였던 택시 영수증을 주별로 정리해 제출하는 것도 이제 끝, 그 모든 것이 6개월 전의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년 동안 내가 이 고행길의 중심에 서서 박 파트장의 얼굴에 사직서를 날리지 않았던 건 그러니까 사실,


"현호 씨, 이거 마셔요!"


그러니까 수 천 번도 넘게 '그만둘 거다'라는 말을 삼킨 이유는 바로 저 여자 때문이다, 이지영.


"벌써 새벽 1시가 넘었어요. 오늘은 또 철야네요."


지영이 넘겨준 오로나민-씨를 급하게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철야가 있는 밤의 새벽 1시 언저리면 언제나 이곳 13층의 휴게실 난간에서 오로나민-씨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 이지영. 철야의 나날이 길어질수록 지영의 자리에 놓은 오로나민-씨도 그와 비례해 늘어나곤 했다. 그걸 보며 나는 저건 분명 나를 위한 선물, 나의 것임을 확신한 채 지내왔다. 그리고 그 확신은 - 그래, 99.9퍼센트쯤은 맞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이렇게 내 손에 오로나민-씨가 들려 있으니까.


최근 일주일 동안은 잔업이 끊기지 않았으므로 매일같이 이 곳 난간에서 한 번씩 소리를 지르고 복귀하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지영이 나의 곁에 있었다. 길 건너편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 빌딩 숲을 바라보며 저 많은 빌딩은 전부 불이 꺼져 있는데 우리 회사만 이렇게 반짝이고 있다고, 지영 씨는 이게 너무 웃기지 않느냐고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을 때 그녀는 뭐라고 했더라, 그래, 그래도 깜깜한 밤에 이렇게 한 빌딩만 환하게 밝게 빛나면 예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네에에? 뭐라고요 지영 씨? 아니 그러니까 반대편에서요, 반대편에서 누군가 우리를 보면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암흑 속에서 빛나는 우리가 예뻐 보이지 않을까요?


하아. 나는 지영의 말을 듣고 넋을 잃었다. 아니, 내가 넋을 잃은 건 지영의 말 때문인가 지영 그 자체 때문일까. 있잖아요 지영 씨, 빛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지영 씨뿐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나 같은 놈이 어떻게 지영 씨 옆에서 빛 날 수 있느냔 말입니까. 당신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 옆에서요.라는 말을 나는 목구멍 아주 깊은 곳까지 꿀꺽, 삼켰다.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나는 내 책상 서랍 두 번째 칸에 잠들고 있는 사직서를 박 파트장에게 던지지 않을 것이다. 이 철야의 새벽이 끝난다고 해도, 한국에서 오로나민-씨가 단종된다고 해도, 저 여자 '이지영'과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 이렇게 나란히 있는 한,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절대, 절대로.


https://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66981&trackId=2131067


매거진의 이전글5시 4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