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석별의 춤' 초단편 노래 소설
잘 지내시는가, 건조한 문체로 메신저 깊숙한 곳 아래에 가라앉아 잊고 있던 정민의 이름이 훅 하고 올라왔던 순간 예희는 740번 버스를 타고 있었다. 외근이 빨리 끝났지만 회사에는 보고하지 않고 외근지인 신촌에서 집인 삼성까지 가는 버스에 올랐던 참이었다. 집까지 740번 버스를 타고 족히 1시간 반은 넘게 걸리니 예희는 어차피 회의를 했을 시간을 좀 잘라 사용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하고 버스 뒷자리 창가에 기대 쪽잠을 자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자고 5시 45분 즈음 일어나 ‘이제 일이 끝났어요, 여기서 바로 퇴근하겠습니다’라고 팀장에게 문자를 보낼 예정이었다.
버스가 반포대교를 지나 고속터미널에 다다랐을 즈음 도착한 정민의 메시지에 놀라 예희는 퍼뜩 선잠에서 일어났다. 팀장에게 문자가 오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던 터라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5시 15분, 메시지의 주인공은 팀장이 아니라 4개월 전에 연락이 끊겼던 정민이었다. 핸드폰 화면 정중앙에는 잘 쓰지 않아 어딘가에 처박아 놓은 메신저의 어플 이미지가 올라와 있었다. 이걸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예희는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열었다. 4개월 만의 연락이라고 해도 전혀 놀라울 것이 없었다.
잘 지내시는가, 저는 잘 지냅니다. 정민 씨는 잘 지내시는지?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거래처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말투로 가볍게 안부를 묻는 5시 15분의 언저리의 메시지들 바로 위에 4개월 전에 나누었던 대화가 남아있었다. 2018년 7월 2일, 밥은 뭐 먹었는데? 돈가스. 2018년 6월 30일, 잘 들어가고 다음 주에 봐. 2018년 5월 2일, 이거 완전 괜찮지, 나 이거 살까? 그래그래 그거 좋다. 현재와 멀어질수록 그들의 대화는 평범했고 달콤했으며, 수다스러웠다. 예희는 정민과 주고받았던 수많은 대화들 속 곳곳에 남겨져 있는 이모티콘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정민과 이 메신저를 사용하면서 구입하게 된 이모티콘만 몇만 원은 했을 텐데 이걸 4개월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니, 그 사실에 갑자기 울적해졌다. 얼마 전에 큰 맘먹고 산 3천 원짜리 <이웃집 토토로> 스티커도 한두 번 밖에 못 써본 것 같은데.
언제 연락하나 기다리고 있었어. 예희는 안부만 묻고 있던 정민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정민도 곧바로 답했다. 네가 먼저 연락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안 했어? 그냥 좀 바빴어, 일도 많고 몸도 안 좋고. 실제로 그렇게 까지 바쁘고 아픈 건 아니었지만 예희는 그냥 투정을 좀 부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마지막이겠지. 아무렴 어때, 그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차피 알 수도 없을 걸. 그리고 그건 예희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만날까? 네가 언제든 시간 되는 때 맞출게, 나는. 예희는 정민의 저 말이 자신을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럼 금요일에 시간 되니? 예전에 가던 시장 근처 술집 거기서 볼까? 정민은 조금 머뭇거린 후 답장을 했다. 미안, 밖이라 답장이 늦네. 그러자, 그럼 거기서 저녁 9시 즈음 보면 어때? 좋아. 그날 봐. 예희는 정민에게 인사 대신 자신이 자주 쓰던 이모티콘을 보냈다. 정민은 답이 없었고, 예희의 이모티콘은 두 사람의 어울리지 않는 대화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 중 어느 하나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두 사람의 시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끝났음을 알고 있었다. 예희는 그 용기를 먼저 내어준 정민이 고마울 다름이었다.
740번 버스는 삼성역 사거리에서 유턴해서 다시 신촌으로 회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5시 47분, 예희는 팀장에게 ‘저는 늦어서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문자를 보낸 후 버스에서 서둘러 내렸다. 퇴근시간으로 붐비기 직전의 한적한 버스정류장에 앉아, 예희는 다시 핸드폰을 열어 달력 어플을 꺼내어 2018년 11월 2일을 선택해 알림메모장에 다음과 같이 메모했다.
-풍림식당 저녁 9시, 정민,
늦지 말 것.
https://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66981&trackId=2131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