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9와 숫자들 '선유도의 아침' 초단편 노래 소설

by 강민영

“뭐야, 어딨어. 빨리 와. 나 아까 도착했어.”

“알았어 조금만, 이제 역에서 내린다.”


민주가 전화를 하는 동안 가게 직원은 이미 능숙한 손놀림으로 갖가지 반찬들이며 그릇들의 세팅을 마치고 있었다. 민주는 테이블 바닥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살피면서 수저통을 찾았고, 자신의 앞에 먼저 그리고 자신의 반대편 방향으로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직원이 자리를 뜨기 전에 놓치지 않고 직원을 항해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크게 소리쳤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하얀색 종지들에는 별 볼 일 없는 반찬들이 놓여있었다. 민주는 김치, 상추, 쌈장 이런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민주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눈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쟁반에 담겨 있는 핑크색과 하얀색이 곱게 섞여있는 고기, 생고기뿐이었다. 빨리 고기를 굽고 싶지만 진우가 올 때 까진 참아야 한다, 혼자 고기를 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민주는 그런 대담함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진우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곧 진우가 앉을자리의 수저를 정확히 11자 모양으로 재정비했다.


민주는 몇 주 전부터 여기저기 카톡방을 들쑤시고 다니며 고기를 먹고 싶은데 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고, 돌려 말해가며 고기고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깟 고기 마트에서 사다가 구워 먹으면 되지 않냐는 핀잔도 들었지만 그러면 또 ‘고기’라는 음식을 먹는 느낌이 안 들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희진아 오늘 고기 콜? 다희 씨, 끝나고 고기 먹으러 갈래요? 야야, 오늘 고기각 아니냐,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민주는 최소한의 자존심만 지켜가며 필사적으로 고기를 함께 먹을 사람을 찾았지만 추석이 가까워서 그런지 다들 끊임없는 야근에 묶여 있거나 추석 대비 몸매 관리를 하거나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서 너 달에 한두 번 먹고 싶어 지는 고기건만 왜 이렇게 타이밍이 좋지 않은지. 오늘만큼은 정말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일념에 민주는 카카오톡 대화방들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뒤지고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서 진우의 이름을 찾았다. 진우는 한 달도 더 전에 보낸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메신저의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대화창을 여니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는 ‘잘 들어갔어?’ ‘잘 들어왔어, 잘 자’에서 멈춰있었다. 가물한 기억이었지만 아마 이때도 술을 마신 것 같았다.


딸랑하는 작은 종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가게 문 쪽을 빼꼼 바라보니 진우가 숨을 훅훅 몰아쉬며 급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서두른 것 같은 인상, 바깥이 그렇게 추운데도 땀이 송골송골 올라붙은 진우의 이마와 목을 보며 민주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빨리 출발했어야지, 고기 구울 준비 다 되어있어 이제 굽기만 하면 돼. 민주는 고기 집게를 한 손에 들고 챙 챙 두 번 집게를 부딪혀 소리를 냈다. 전투적으로 고기 굽기와 고기 먹기에 돌입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각오를 다지는 민주를 보며 진우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정민주, 오랜만이네. 그사이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너.”


민주는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 한 덩이를 불판에 올렸다. 미리 중불로 익혀둔 불판에 치익 하고 고기가 올려 붙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그런 민주를 바라보며 민주에게서 집게를 빼앗아 고기 두 덩이를 연속으로 불판에 올렸다. 오, 뭐야 네가 고기 구울 거야? 나 원래 고기 잘 굽잖아, 이런 건 내 전문이지. 멋있네, 강진우. 민주는 고기 쟁반 옆에 놓여있던 소주 뚜껑을 따며 두 개의 잔에 차례로 소주를 채웠다. 진우는 불판 위에 올려진 고기 세 덩이의 밑면을 주시하면서, 그런 민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기 먹고 싶은데 부를 사람이 없어서 불렀다, 왜. 우리 술 마신 지도 오래되었잖아, 그렇지?"


민주는 진우에게 소주잔을 건넸고 진우는 그 잔을 받아 들어 꿀꺽 냉큼 비워냈다. 민주가 물개 박수를 치면서 역시 강진우 술 잘 마셔!라는 호들갑을 떨자 진우는 어깨를 으쓱 추켜세우고 다시 고기 굽기에 집중했다. 민주는 빈 소주잔에 다시 소주를 채워 넣으며 진우를 보며 말했다.


"본 지도 오래되었고, 보고 싶기도 했고, 그렇지?"


열심히 고기를 노려보며 바삐 움직이던 진우의 집게가 잠시 멈칫했다. 진우는 배실배실 웃는 민주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고기가 올려진 불판 위로 시선을 옮겼다. 민주는 여전히 그런 진우의 손과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런 민주의 시선이 머쓱했던 진우는 고기를 자를 타이밍이 아니었는데도 거기 가위 좀 줘봐,라고 하며 민주의 주의를 차단했다.


"정민주 너는 가끔 폭주할 때가 있더라."


조금 더 익혀야 할 것 같은 고기를 애써 꾸역꾸역 자르며 진우가 말했다.


"가끔씩 폭주해서 이렇게 급작스럽게 부르질 않나, 한밤 중에 술을 마시자고 부르질 않나, 내가 심심풀이 땅콩이냐, 정 씨 아줌마."


따닥, 불판에서 기름이 튀어 진우의 이마에 옮겨 붙자 진우는 아 뜨뜨, 소리를 내며 불판에서 손을 재빨리 뺐다. 민주는 잽싸게 불을 중불에서 약불로 내리며 진우에게 물티슈를 건넸다.


"야야 괜찮아? 고기 구울 때 쓸데없는 생각 하면 그렇게 된다니까? 말을 못되게 해서 벌 받은 거야, 너."


물티슈를 건네받은 진우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 민주를 어이없는 듯 바라봤다. 정민주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한 달도 훨씬 전이었나, 정확히 두 달은 넘지 않은 것 같고 한 달은 지난 것 같았다.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기억 속에 두 볼이 발개져 자신을 한껏 끌어안던 새벽어둠 속 정민주의 모습만 또렷하게 기억났다. 야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이미 취해있는 민주가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혀가 반쯤은 접힌 말투의 민주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술 마시자, 어디냐, 빨리 와, 등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냈고 진우는 민주의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재빨리 택시를 잡았다. 그런 날이 한 달에 한두 번은 있곤 했으니 진우가 1년에 민주를 만나는 날은 얼추 12번은 넘었다. 민주와 만날 때마다 진우는 늘 취하도록 술을 마셨고 그 술자리의 끄트머리에 언제나 민주는 '보고 싶었다'는 말을 붙였으며 높은 확률로 민주와 잠자리를 가지곤 했다. 민주를 안을 때마다 진우는 이 정도면 80, 이 정도면 90 정도의 애정은 생겼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정민주는 80에서 0, 90에서 0으로 돌아가 있었다.


"고기 타는데, 강진우 고기 잘 못 굽네"


타닥, 불판에서 또다시 기름 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집게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는 그런 진우를 흘겨보며 진우의 손에서 집게를 빼앗아 능숙하게 불판을 휘젓기 시작했다. 양손을 바삐 움직이는 민주를 보며 진우는 머쓱해진 두 손으로 엉겁결에 소주병과 소주잔을 잡았다. 아직 차가운 기운이 서려있는 소주병을 잡으니 정신이 확 드는 것도 같았지만 되려 멍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강진우가 다 해줄 줄 알았는데 틀렸네, 틀렸어. 민주의 툴툴거리는 혼잣말은 불판 위의 지글거리는 소리와 곧 섞였고, 진우는 그 상황이 음계와 가사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오케스트라를 듣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나 취했나 봐? 하하, 진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민주는 그런 진우가 어이없고 웃겨서 슬쩍 미소를 흘렸다.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 큰 소리로 직원을 부르는 민주에게 오늘은 그 정도만 하는 게 어떻냐는 말을 하려던 진우는 잠시 고민 후 입을 닫고 그 말을 삼켰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다시 제로로 돌아갈 텐데 뭐, 라는 생각을 하며 진우는 병에 남아있는 술을 잔에 가득, 그리고 탈탈 털어 채웠다. 오늘만큼은 술에 취하지 말자 다짐하며 고깃집 문을 비장하게 열었건만 역시 오늘도 내 의지대로 흘러가진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진우는 소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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