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떨쳐내는 사적인 외침

닉네임을 까짓것으로 지은 이유

by 까짓것


한 면접에서의 일이었다. 면접관이 마지막 질문으로 좌우명이 무엇이냐 묻자 ‘까짓것’이라 대답했다. 생각했던 답이 아니었는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인 면접관을 보고 이내 생각을 덧붙였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생각이 많은 편인데, ‘까짓것’이라 외치면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기에 제 삶의 지표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까짓것’의 정의를 검색해 보니 “별것 아닌 것”, “무엇을 포기하거나 용기를 낼 때 하는말”이라 나온다. 그렇다면 나는 까짓것이란 명사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유선상으로 섭외와 취재를 진행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일반인은 물론 평소 동경했던 연예인을 비롯해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일상생활에서 말을 섞어볼 수조차 없을 만한 인물과도 꽤 긴 대화를 해야만 했다.


그럴 땐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오곤 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도 되는 걸까?” “취재는 기세라고 하는데 쫄면 어떡하지?” 일상 대화가 아닌 목적이 있는 대화였기에 최대한 다양하고 유익한 답변을 들었어야 했으며, 그 어디서도 말하지 않은 신선한 내용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철판을 깔아 상대방이 나를 편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하는 게 관건이었다. 내 성격상 그러려면 기세가 중요했다. 왜 선수들이 시합 전 기세를 잡기 위해 기합을 넣는다고 하지 않던가? 사회생활 중 나에게 기합이란 바로 ‘까짓것’이란 외침이었다. 두려움을 떨쳐내는 이러한 외침으로 나는 예전의 나보다 한결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미리 걱정하지도 말고, 함부로 상상하지도 말라고” 말이다. 우리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미리 사서 걱정을 하면 뇌는 그 일을 실제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두려움은 위험한 ‘상황’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상상’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럴 땐 그 무엇보다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마인드컨트롤이란 바로 “까짓것”이라는 외침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닉네임 까짓것>의 인생에는 앞으로 수없이 많은 두려움과 갈등, 상처, 무기력, 외면, 회피 등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외칠 것이다. “까짓것 한번 해 보자고”, “까짓것 이거 망해도 내 인생이 망한 건 아니라고”, “까짓것 실패하면 실패하는 것이라고”, “까짓것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뭐 어떠냐고” 말이다.


현재까지도 나의 마음속엔 ‘까짓것’이란 용기 있는 외침이 소리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는 나에게 오늘도 외친다. “까짓것 그냥 해 보자고” 말이다. 닉네임은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 중 하나라고 하지 않던가? 한 번 사는 인생 까짓것 잘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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