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심술쟁이세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하여

by 단비
인생이라는 거 그렇게 공평하지가 않아
평생이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인 사람도 있고
죽어라 달렸는데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어

- 갯마을 차차차 2화


나에게는 드림팀이라 불리는 평생 친구들이 있다.


서른이 되던 해 직장 때문에 처음 내려갔던 울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울산의 한 교회에서 인생 친구들을 만났다. 디자인, 연극, 미술,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만나 말씀을 접목해 교회 프로젝트도 하고 수련회도 진행했다. 퇴근 후 밤을 새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아침에 졸린 눈으로 다시 출근해도 마냥 행복하던 시절을 그 친구들과 함께 했다.


2,30대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던 우리. 지금은 각자 울산, 평택, 서울, 제주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서로의 기도가 필요할 때 마다,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마다 단톡방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시험관 4차에 성공한 뒤 자궁외임신 판정으로 힘들어 할 때, 결국 왼쪽 나팔관을 잘라내는 복강경 수술을 하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시기에도 드림팀 친구들의 기도는 큰 힘이 되었고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제주에 와서 일상을 보내던 어느 주말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드림팀 한 친구로부터 개인 톡이 왔다. 핸드폰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는 데 몇 줄의 카톡이 보였다.

'나에게 언제 전화를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했다는.. 전하려는 소식을 내가 듣고 내가 더 속상해지지 않을까..' 하는. 몇 줄의 톡만 봤을 뿐인데도 왜인지 심장이 덜컥 내려 않았다. 내용이 짐작이 되었다.

최대한 늦게 읽어야지 싶었는데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톡을 열어 긴긴 글을 읽었다.


짐작했던대로 둘째를 가졌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임신을 축하해달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겪은 일들을 듣고 그간 함께 기도해준 친구가 나의 상실감과 좌절감을 배려하며 조심스레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글이었다.

수없이 썼다 지웠을 글이었다.


첫째를 어느 정도 키우고 이제 막 자신의 커리어를 다시 쌓아가고 있는 친구는 둘째를 가진 것에 대해 마냥 기뻐할 수 없어 왠지 모를 죄책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나에게 왔으면 많이 축복받았을 아이가 자신에게 와서 온전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했다.


난 그 친구의 장문의 톡에 더 긴긴 답을 보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또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웃다가 울다가 멈추다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께 질문하다가 하나님을 원망했다가 그렇게 글을 써내려갔다.





고마워.


소식을 어찌 전할까

고심하며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배려 가득한

마음이 깊이 느껴져.


아이들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시험관 1, 2, 3, 4차까지 하며

실패할 때마다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게

힘이 들더라


그런데 둥이 조카들을 만나야해서

기를 쓰고 기도했어.

조카들을 비롯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정말 많은 날을 그 기도만 했었어.


지금도 계속 기도해.


사람들이

이제 괜찮냐고 많이들 물어.

난 괜찮아지는 문제는 아니라고 대답해.

그 때 그 때

마음이 추스러지거나

아니거나의 문제인 것 같아.


아마도 엄마가 되어야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

엄마가 되지 못하면

그 마음 그대로 안고 살며

다른 삶에 집중하며 살게 되겠지.


지금은 우리 부부

몸과 마음의 회복에만 힘쓰고 있어.

시험관은 이제 힘들어서 잠정 포기했고

희박하지만 올해까지 자연임신 시도해보려고.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둘의 삶을 살아갈 생각이야.

그러자면 둘의 건강이 더 중요하니

운동도 좀 하고,

청결에도 신경써서 청소도 분담하고 있어.


아이가 없다고 저주받은 삶은 아니지만

아이는 분명 축복인 것 같아.


축하해.


새 생명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임신 소식을 조심스레

한 자 한 자 긴시간 고심하며

나에게 전해주는

너의 아이라서

더 축하하고 축복해.


너가 계획했던 삶이

아이들과 함께

더 풍성하게 채워질 수 있길.


통화는

너가 가능할 때 언제나 콜.

괜찮든 아니든 그 마음 그대로.


나도 보고싶다.


사랑하는 OO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복해.





드림팀 내에서 가장 먼저 친해졌던 친구.

누군가에게 말하기 너무도 창피했던 찌질함들을 공유한 친구.

그 친구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날의 톡으로 뭔가 둘 사이에 삼겹줄이 더 끈끈하게 묶여진 것만 같았다.


난 그 날 친구와 주고 받은 톡을 읽고 또 읽으며 예배의 말씀을 대신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O~O ~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이톤의 내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던 친구는 여전했다. 처음 만났던 12년 전과 결코 같을 순 없지만 오래 함께한 친구가 주는 편안함 가득한 늘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나도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좋았다.


우리는 서로 괜찮지 않은 마음 그대로를 안고 긴 시간 통화를 했다. 불과 며칠 지났을 뿐인데 톡을 주고 받았을 때 보다 조금은 더 각자의 상황에 적응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듯 했다.


우리는 둘 다 기독교인이지만 독실함과 신실함 보다는 날라리나 말썽쟁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알겠습니다.' '믿습니다.' 라는 대답보다 "왜요?" 라는 질문이 앞서는 우리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아니 결코 알지 못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고 심술쟁이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아이러니 가득한 우리네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2세를 간절히 기다리는 누군가에게는 시험관 4차까지 했는데도 자궁외임신으로 아이를 거두어가시고

하나만 낳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원하는 누군가에게는 둘째를 주시고.

하나님, 심술쟁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이 넘게 울다가 웃다가 남편들 뒷담화에 하나님 앞담화로 가득했던 그 날의 통화는 따뜻했다. 목소리를 듣고 나니 친구가 더 보고싶어졌고 드림팀이 아주 많이 그리워졌다.


나는 아직도 하나님의 큰 뜻이나 나를 향한 계획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인생의 아이러니를 경험하며 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기다림을 함께 나눌 친구를 주셨음에 감사하다.

상사 욕하며 친해지는 부하직원들처럼 하나님 욕하며 더욱 돈독해지는 평생 친구를 주신 기분이랄까.

그렇게라도 내 이야기 하며 나를 잊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KakaoTalk_20211012_195927989.jpg 조천항에서 본 초승달.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분. 내가 어찌 그 분의 큰 뜻을 다 알겠느냐만 그래도 나를 향하신 계획이 궁금하긴 하다. 난 욥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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