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생각했다

지난 일기와 지금의 나

by 단비


길을 잃었다 생각했다.


되고자 하는 사람도 되지 못했고 하고자 하는 일도 이루지 못했고 여전히 난 내 이력서 한 줄을 채워갈 경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많은 것이 하고 싶다.


그런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아바는 여전히 나와 함께 하길 원하시고 순간 순간의 시간들을 아바와 밀도있게 보내길 원하신다.


혼자서도 사부작사부작 늘 무언가를 하던 나였는데 급 심심하다 느꼈다. 잠시 바람도 쐬고 친구도 만나러 정말 급 비행기를 탔다. 맛난 것도 먹고 우정사진도 찍고 잘 쉬다 왔다.


집에 와서 또 뒹구르르대고 있는데 문득 그런 마음이 든다.

길을 잃은 게 아니었구나. 애초부터 정해진 길 따윈 없었던거구나. 여러 갈래의 길.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지 고민했었는데 애초부터 정해진 길 따윈 없었으니 그냥 이쪽도 갔다가 저쪽도 갔다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그게 길이 되겠구나.


잠시의 바람이 준 귀한 깨달음. 그 시간 가운데 계속해서 내 마음을 두드리신 분. 잘 곳을 내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준 친구. 보금자리로 돌아왔을 때 격하게 환영해주는 여보야.


세상엔 감사한 것이 참 많다. 어쨌든 난 걷고 싶은 길은 다 걸어보기로 했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힘들면 멈춰서서 잠시 쉬었다가.


인생 뭐 있어.



KakaoTalk_20220218_154804229.jpg 은하수길에서 친구와 함께 :)







여기까지가 나의 지난 일기다. 2021년 12월 초.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


그 두 달 동안 나는 한 주에 한 번 우쿠렐레를 배우러 다녔고, 또 한 주에 한 번 집에서 40분 거리의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설 연휴에 육지에 올라가 가족들을 만나고 왔으며, 이번주 내가 가고 싶었던 직장을 계속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급 복지관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뭐 말하자면 길지만 한마디로 스카웃 되었다. 데헷.


나는 사회복지사다. 무려 1급 자격증이 있는. 그 자격증을 썩히고 있은지 1년. 보수는 말그대로 최저시급 수준이지만 신입이 사례관리 관련 업무를 배우면서 경력을 쌓을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기에 업무만 보자면 참 좋은 기회이다. 그러고보니 최저시급에 계약직은 스카웃 되었다고 말하기가 좀 어렵네. 어쨌든 공공기관도 미련없이 때려치고 나왔던 나인데 이제와서 보수가 큰 의미가 있겠냐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급여의 액수가 나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다시금 되뇌이며 사례관리 분야에서의 경력을 쌓아가기로 다짐했다. 남은 인생 길게 보자. 한 방 아니고 한 걸음씩 걷자고 성격 급한 나에게 다시금 말을 건넨다.


길을 잃었다 생각했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라고 생각의 방향을 돌려보는 말을 씩씩하게 하곤 하지만 사실 새로운 길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난 이 길이 맞는지, 없는 길을 헤치고 가야하는 건 아닌지 흔들린다. 이 나이쯤 되면 정말 내 인생에 대한 매 순간의 선택이 확고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자주 많이 흔들거리며 걷고 있는 듯 하다.


얼마 전 '엄마는 아이돌'에서 박진영이 나와 선예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선예는 '자신의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뭐 내가 그닥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열심으로 살아온 건 아니지만 선예의 삶과 마음이 그냥 이해가 되었다.


예전 직장에 있던 동료와 대화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7년이 넘게 일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과장이 되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던 공공기관 정규직을 내려놓고 제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한동안은 백수로, 한동안은 우리가 살 집을 리모델링 하며, 또 한동안은 시험관을 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물론 그 사이 사회복지학과 학위도 따고, 열심히 활동해서 크고 작은 상도 받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사회인으로서 나의 경력은 단절되었고 내가 꿈꾸던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성실이 능력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지는 못한다. 잘 쓰고 싶어서 오히려 쓰지 못하고 있다는 핑계나 대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느때로 돌아가더라도 나의 선택은 같을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라고.

어쩌면 그 대답은 나의 삶이 후회 투성이여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도무지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도 나의 선택은 그 때와 같지 않을거라서.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결코 돌이킬 수 없기에 나의 시작은 늘 지금부터다.


그냥 하루 하루 나에게 주어진 분량의 시간에만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단 5분 뒤의 일도 모르는데 다음 주 일을, 1년 뒤의 일을 어떻게 알겠어.

하루 하루에는 최선을, 인생 전체는 흘러가는대로.


부디 3년이나 천상 백수로 지내다가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직장인의 일상이 고되지 않기를.

20분이라도 매일 꾸준히 해 온 요가 덕에 쌩쌩한 체력으로 버텨주기를.

그 쌩쌩한 체력으로 주 1회 브런치 작가 본연의 임무인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제발.



KakaoTalk_20220218_154719854.jpg 황리단길. 길을 잃어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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