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말의 진실

나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by 단비

작년 10월 브런치 공모에 10편의 글을 후다닥 작성해 겨우 제출하고는 브런치는 뒷전이었다.


바빴다.


9월부터 제주시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내가 쓰는 소설 한 편' 수업을 들었다. 매주 2시간이고 소설 쓰기 수업은 처음이라 별 기대가 없었는데 수업에 나가니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글을 썼다.


9월부터 시작하는 JDC이음일자리 사업에 SNS마케터로 5개월 동안 일을 했다. 시간제 일자리였지만 매주 초과근무를 했다. 총 30명의 SNS마케터 중 4명이 한 조를 이뤄 3주에 한 기업씩 매칭을 했다. 3주 동안 기업이 원하는 홍보물을 제작하고 개인채널에 올렸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개인채널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니 홍보 효과는 미미했다.


SNS마케터 업무와 별도로 개인채널의 성장을 위해 노력했다. SNS마케터 업무를 하면서 퍼스널 브랜딩, 블로그 성장시키기 교육도 받았다. 개인채널을 성장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1일 1 포스팅이라고 했다. 1일 1 포스팅을 하라고 하는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체험단에 지원을 했다. 처음에 한 군데 당첨이 되고 방문 후 정성스럽게 포스팅을 작성하니 그 후로 지원하는 체험단마다 당첨이 되었다.


처음에는 일 방문자 수 100 정도 되던 블로그가 이제 일 방문자수 700이 되는 블로그로 성장했다. 인플루언서에게는 우스운 숫자겠지만 난 이것도 감지덕지다.


이제 방문자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올리고 싶은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두 가지의 욕구를 어떻게 하면 만족시킬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00개가 넘는 영화 관련 글을 올렸지만 해시태그 하나 쓰지 않아 그 글을 조회한 인원은 많지 않다.


반면 체험단으로 당첨되어 다녀온 맛집 글이나 액티비티 관련 글은 내 블로그의 일 방문자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효자 포스팅이다. 제주를 소개하는 글이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 책을 리뷰하는 글 모두 많은 이들이 읽어주면 좋겠다. 영화 글은 더 잘 쓰고 싶으니 점점 더 글을 쓰지 못하겠다. 이런 양가감정은 대체 뭐지.


개인채널이 조금 성장하니 도전정신이 생겼다. 2023년 제주도민기자단에 지원했는데 선정됐다. 2023년 제주특별자치도 도민블로그기자단이 되었다. 1월이 되자마자 활동을 시작했고, 바로 어제 (2/9) 발대식에 다녀왔다.


'내가 쓰는 소설 한 편'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썼던 단편소설이 엮어져 책으로 출판되었다. <바스락>이라는 제목의 테마소설집이다. 강의를 해주셨던 작가님의 노고 덕에 출판까지 가능했다. 함께 모여 자축을 하고 지인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비록 공동저자이긴 하지만 3개월이면 책 한 권이 나오는데 그동안 나는 뭐 하고 있었던 거지? 꾸준함과 성실함이 없었던 거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매주 블로그에 단비의 오늘을 올린다. 매일이 그냥 흘러가는 게 아쉬워서 하루동안 뭘 했는지 간단하게 적는 일종의 개인 업무일지 같은 형식의 글이다. 단비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한 주를 넘긴 적이 없었는데 오늘 글을 쓰려니 10일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나 바빴네."라고 말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거였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쁘다는 건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만은 아닌 듯하다. 집에 와서 OTT를 틀어놓고 드라마를 보고 휴대폰을 보며 잠깐의 게임을 하지만 나의 하루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약속을 잡고 체험단을 신청하고 몸을 바삐 움직이긴 하지만 정작 지금 나의 마음이 어떤지 잠시 돌아볼 시간을 떼어놓지는 않았다.


오늘의 큐티를 하는데 더욱 명확해졌다.


일상의 요구를 뒤로 물리고 나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라.

항상 분주하게 일하는 덫에 빠지지 마라.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는 일 가운데 상당히 많은 것이 내 나라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다. 의미 없는 일은 피하고, 끊임없이 나와 친밀한 교제를 나눠라.


내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 바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 중심을 더 굳건히 할 수 있도록 큐티도 빼먹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과 기도의 시간을 떼어놓아야겠다. 휴대폰은 매일 들여다보면서 잠시 내 마음 들여다볼 시간은 떼어놓지 못하니..


바쁘다는 건 오롯이 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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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분명히 알고 내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보면 바쁘지 않게 된다. 컴퓨터 바탕화면 정리를 잘해두면 필요한 파일을 단번에 찾아내는 것처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면 클릭 한 번이면 끝나니 이 파일 저 파일 열어보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잘 몰랐다. 아니 알고 있지만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실천을 하지 않았다.


나는 9 to 6의 업무가 맞지 않는 사람이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마당 보며 멍 때리고 물 한 잔을 마시고 요가를 20분 하고 나서 몸이 깨어나면 9시 반 즈음 책상 앞에 앉는다. 체력이 달려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아졌다. 2시간 일하면 30분은 쉬어줘야 한다. 쉬는 시간엔 무조건 눕는다. 내가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사람을 좋아해 공동체나 모임은 좋아하지만 상하관계가 명확하고 비합리적인 의견을 계급으로 강요하는 권위적인 조직문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행정력과 잘 갖추어진 체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소모적인 조직의 분위기와 2중3중으로 일하게 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개선되야 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애진작에 알았다. 그래서 공공기관도 그만두고 자연과 함께 살겠다고 제주에 와서 생활한 지 5년이 넘어간다.


이곳에 와서도 계속 월급 주는 회사에 기웃거렸다. 어쩌면 정부 지정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오래 일했기에 그에 걸맞은 월급을 받는 게 내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잠시 월급 주는 회사에 기웃거렸지만 이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물론 지난 경력을 살려 취업한 것이 아니기에 월급도 쥐꼬리였다. 이 월급 받고는 일 못하겠다 싶었다. 이전의 경력이 있으니 당연히 내가 회사에 해주는 일은 월급을 훨씬 웃돈다고 생각하니까. 뭐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고용주와 고용인은 언제나 동상이몽이니. 그래서 결심했다. 원하는 월급 이상을 주는 곳이 아니면 다시는 조직에 몸 담지 않겠다고.


내 성향에는 프리랜서가 딱이다. 혼자 해보자.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보이는 곳에서 일하자 싶었다. 그게 바로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우리 집. 작가, 리뷰크리에이터, 기자단..

이제야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았다. 워케이션의 1번지 제주에서 디지털노매드로 살기. 물론 월급이랄 건 없다. SNS마케터 시간제일자리 업무도 끝이 났고 체험단으로 활동하며 선지급으로 받는 서비스와 기자단 활동비가 지금 수입의 전부이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행복하다. 그거면 되었다.


만족이라는 말은 물이 발목까지 차는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 몸 중에 발목 까지라면 그깟 행복, 삶에 만족하는 일 해볼 만하지 않은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매일 하루의 끝에 나를 토닥토닥해 줘야겠다. 바쁘다는 '말'은 성실한 '행동'으로 대신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에게 물어본다.


"오늘도 즐겼니?"

"그거면 충분해.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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