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다를 뿐이다.

누구도 틀린 것이 아니다.

by 단비
길 잃은 외뿔고래가 흰 고래 무리에 속해 함께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요. 저는 그 외뿔고래와 같습니다. 낯선 바다에서 낯선 흰고래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답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6화 중


내가 기억하는 2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매체들은 X세대다 Y세대다 MZ세대다 하며 나이별로 세대를 나누고 알파벳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그룹화 시키고 있다. 분명 그 세대로 분류된 그룹 내 인원만큼의 다양한 성향과 특성이 있을텐데도 사회는 굳이 세대별 특성들을 통계내고 기어이 묶는 것을 즐긴다.


MBTI가 뭐예요?

에니어그램은 몇 번 유형인가요?

혈액형은 무슨 형이에요?

ENFP, 7번 유형, O형.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는 여러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다. 이 답변만으로 나를 설명하기엔 불충분하다. (사실 저 대답을 하면서도 늘 내키지는 않는다. '나는 나야. 나를 저런 유형으로 가두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해.'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교회 친구들이 '외계인'이라고 놀려도, 학창시절 엄마가 "넌 왜 그렇게 질문이 많고 유별나니?" 라고 했을 때도,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내 말에 "그 사람이 언니 또라이인거 알아?"라고 후배가 되물었을 때도 난 순딩한 나를 놀리는 그저 그런 친구들의 장난이겠거니,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응당 하는 이야기이겠거니, 후배가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거니(난 또라이라는 말이 섹시하고 멋지게 느껴진다.)했다.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내가 대부분의 많은 이들과 같지 않구나.'를 느꼈던 건 조직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차장님, 과장님과 함께 하는 회의에서도 난 내 의견을 말했고, 선약이 있는 경우에는 당일 갑자기 잡힌 회식은 참석하지 않았다. 강제성은 없다는 선임의 말을 글자 그대로 철썩같이 믿었다. 수평적인 관계로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 의견을 내고 퇴근 이후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좋게 보는 그룹과 좋게 보지 않는 그룹이 나뉘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후배들은 나를 좋아했으나 상사들은 나를 불편해했다. 한국의 유교문화와 직장의 꼰대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눈에는 내가 고깝게 보였던 거다. 즐겁게 일했지만 승진은 늦었다. 일을 열심히 잘해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회식자리에서 상사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직원의 승진이 더 빨랐다. 부당하다 여겼지만 참았고 그 부당함이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나의 태도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 때 깨달았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불편해하지 않는 행동들을 나는 불편해하는구나. 그리고 나는 그걸 표현하는 사람이구나.


「90년생이 온다」 책을 읽고 나서 독서모임의 멤버들이 "90년생의 특징을 보며 그냥 단비가 생각났다"고 말했었다. 그 책을 읽은 나도 '이게 MZ세대의 특징이라고? 아닌데? 난 예전부터 이렇게 행동했는데?' 라고 생각했다.



나는 환경공학과 석사 졸업 후 환경부 지정기관에서 5년, 공공기관에서 4년을 근무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공기관 정규직을 버리고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에 와서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해 학위를 취득했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땄다. 사회복지사로 사례관리 담당 업무를 하며 5개월을 다녔다. 한달의 휴식 후 이번주 수요일부터 SNS 홍보 마케터 일을 시작한다. 동시에 브런치 공모전도 준비한다.(브런치 공모전은 이렇게 말해놔야 올해 꼭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다시 5개월만에 일을 그만 두었다.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위의 글은 표면적으로 내가 졸업한 과와 직업을 열거해 놓았을 뿐 행간에 나의 생각과 경험과 느낌들은 나 외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나름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내가 가장 원하는 것, 나의 행복을 위한 일들을 선택해 가면 되는 것이다.


나의 선택 앞에 놓인 타인의 수많은 말들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귀 기울일 건 나의 마음과 생각이다. 지난 나의 경험에 비추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다른 이들 보다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나의 행복을 위한 우선순위 등. 그런 나인데도 백수가 된 후 약간의 시간만 흐르면 월급쟁이의 삶에 눈을 돌렸다. 물론 생계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이 크다면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지난 몇 년 나는 급하게 생계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넘칠만큼 풍족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대한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 년, 아니 한 달도 우직하게 나를 믿지 못하고 불안에 흔들렸다. 이제 월급쟁이의 삶에 기웃거리는 나의 습관을 끊어내려고 독하게 다짐했고 다시 선택했다.


아무도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나의 인생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책임과 관심을 가지는 이는 오로지 나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매순간 나의 선택에 당당하자.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아내되는 거니까.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단지 다를 뿐이다.

때문에 당신은 그리고 나는 언제나 옳다.


조금 이상하고

많이 별나지만,

여전히 가치있고

심히 아름답다.



다르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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