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May 16. 2023

언니 이거 책으로 내줘

프롤로그

MZ 따위 개나 줘 버려 

: 별 볼일 없이 아주 잘 사는 언니의 인생 내비게이션





지난 2월 나의 육지여행 미션은 단 하나였다. 


드림팀 만나기. 


드림팀과의 만남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연구사 시험 불합격. 2년여간의 노량진 생활 청산 후 고향집인 춘천에 가서 칩거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승진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때였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면서까지 우겨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결국 시험에도 떨어지고 부모님께 손 벌리며 밥만 축내고 있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 있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쓸모없지 않다.) 그 당시 최진실과 안재환의 자살 기사로 떠들썩했던 때였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나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순 없어 매일같이 '내일 아침 눈 뜨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살던 때였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던 시절 울산의 한 정부지원기관에서 채용공고가 났다. 이전에 일했던 회사의 울산지점이라서 냉큼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울산이 부산 옆에 있다는 것도 태생 처음 알았다. 


울산대학교 산학협력관에서 내려 4층 사무실로 향하며 또각거리던 내 구두 소리, 너무 떨려서 쿵쾅대던 내 심장소리가 아직 들리는 듯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면접을 보러 간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근무 가능하냐?"고 하셨다. 벼랑 끝에서 내민 손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길로 춘천으로 가 짐을 싸서 바로 다시 울산으로 내려갔다.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부동산으로 향해 공인중개사와 함께 발품을 팔아 반나절 만에 집을 구했다. 


백조생활은 면했으나 사방에서 낯선 사투리가 들리는 생경한 땅은 마치 외국 같았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갔던 울산에서의 생활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칠 무렵 울산감리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드림팀을 만났다. 


영화를 애정하는 단비, 디자인을 잘하는 다클이, 드라마를 즐기는 령쓰, 미술을 사랑하는 쏘금이. 꿈 많은 청년들의 만남이었다. 우연히 모이게 된 네 명은 각자가 좋아하는 문화적 소재와 성경 말씀을 접목시켜 프로그램을 기획해 수련회 진행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함께 모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뮬레이션하고 실제 수련회에서 10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행복했다. 꿈 많던 네 명의 청년은 자칭타칭 드림팀으로 불렸다. 밤을 새워서 회의를 하고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헤싱헤싱거려도 마냥 행복했다. 


드림팀은 비슷한 시기 다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 각자의 직장을 얻어 살면서도 연락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난 15년 동안 남자 친구가 바뀌고, 가정을 이루고, 이직을 하게 된 과정들을 공유하며 각자의 선택을 지켜보고 서로의 삶을 응원했다. 결혼과 취업을 축하하고, 먼저 보낸 가족친지의 명복을 빌어주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위로해 주며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5년이나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공유해 왔다. 


현재 나는 제주에, 다클이는 울산에, 령쓰는 평택에, 쏘금이는 동탄에 흩어져 살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와 개개인의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이유로 만나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함께 모이면 서로를 욜랑욜랑거리게 만든다. 






그런 드림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네 명이 함께 모이는 건 5년 전 제주에서의 만남 이후 처음이었다. 오프라인의 어색함도 잠시 서로를 부둥켜안고 반가워하며 수다수다하며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쏘금이가 얼마 전 TCI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다. 모이기 전에 네 명 모두 TCI 검사를 한 후 결과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TCI는 Tempa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의 약자로 유전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기질을 바탕으로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한 성격을 파악하는 검사다. 


물론 네 명 모두 확연히 다른 기질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에피소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타고난 기질 중에 위험회피는 거의 0이 나왔고, 성격 중 자율성은 100이 나왔다. 삼성 팀장 대신 여덟 살 연하와 만났던 일, 공공기관 퇴사 후 제주로 이주해 한량 부부로 살았던 때, 호기심이 생기면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 끝을 보고 마는 것 등이 나의 기질과 성격으로 설명되었다. 


누가 봐도 불안한 환경에서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며, 본인의 선택에 후회 없이 살고 있냐고 쏘금이가 물었다. 난 "단지 나를 잘 알려고 노력하고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쏘금이가 제안했다. "언니, 언니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서 이렇게 살아라 같은 책을 써보는 건 어때?"  그때의 난 심드렁했다. "내가 답도 아니고 난 그냥 내 방식대로 내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건데 굳이." 



그날 드림팀의 만남, 더 자세히는 쏘금이의 제안이 이 책의 시작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과연 이게 책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단 한 사람 쏘금이에게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생겼다. 결정적으로 목차를 보고 "책이 될 수 있겠다."라고 해주신 양지영 작가님과 한 편의 글도 나오지 않았는데 목차만으로도 "재밌겠다, 기대한다."라고 해주신 동네문학전집 회원분들의 격려 덕에 용기를 내본다. 








제주에서 렌터카를 빌리고 내비게이션을 치면 절대 해안도로로 안내하지 않는다. 초보자들이 해안도로의 절경에 빠져 느리게 운전하다가 사고를 낼까 봐서이다. 검색을 통해 해안도로를 목적지로 한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일주동로로만 운전한다. 일주동로는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짧고 효율적인 길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알려주는 길은 아마도 해안도로일 것이다. 가는 동안 황홀한 자연을 누리고 곁에 함께하는 이와 즐겁고 신날 수는 있지만 목적지까지 빨리 당도하는 효율적인 길은 아닐 수 있다. 


 내비게이션의 많은 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나는 별 볼 일 없이 산다. 

별 볼 일 없이 아주 잘 산다. 

별 볼 일 없이 아주 잘 사는 단비의 인생 내비게이션을 선택하신 여러분. 


이제 함께 떠나볼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