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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May 23. 2023

삼성 팀장 말고 여덟 살 연하

“사랑을 보류한다고?
우리 나이에 사치 부리지 마.”  
   
- 멜로가 체질 -






영화와 드라마는 삶을 반영한다. 때론 삶 자체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을 때가 있다. 요즘 영화는 개연성 없고 현실고증이 빈약하면 관객들에게 외면을 당하기 일쑤지만 어디 현실이 완벽한 개연과 순리대로만 흘러가던가. 일상에도 현실성 없고 지독히 판타지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내겐 사랑이 그랬다.        

       


 나의 지나간 남자 친구들.      



 첫 번째 그 자식은 언급하기도 싫다. 바람이 났는데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헤어졌다. 나같이 좋은 사람에게 자기가 한없이 부족하다나. 진부하기 짝이 없는 개똥보다 못한 소리를 내던지고 마지막 생일 선물이라며 비싼 하이힐을 선물해 주고 갔다. 쪼잔한 자식. 생일선물과 이별선물을 하나로 퉁 쳐버리다니. 선물로 받은 구두를 열심히 신고 다녔던 6개월 동안 왜 헤어졌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행복했던 기억만을 곱씹으며 힘들어했던 난 뒤늦게 이별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20대 가장 꽃다웠던 4년의 추억은 그렇게 처참히 뭉개졌다.   

 

   

 두 번째 연애는 그로부터 6년이나 지나서였다. 내 나이 서른 하고도 둘이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만한 회사의 팀장이었다. 그래 다 까버리자. 삼성 반도체 팀장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던 과기대 박사출신 청년은 취업도 쉬웠다고 했다. “취업하고 보니 본인도 이렇게 월급이 많을 줄 몰랐다.”던, 사회에서 소위 잘 나가는 연봉 탑의 인재이자 일등 신랑감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만난 남자친구는 흠잡을 곳 하나 없는 FM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장거리 연애 중이었는데 매일 저녁 전화로 하루의 묵상을 나눌 정도로 신앙심이 깊고,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고, 주변인들에게 매너 있고, 한 마디 한 마디 나를 존중해 주는 말투도 뚝뚝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회사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부모님도 하루빨리 결혼 날짜를 잡았으면 하는 눈치셨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대로 결혼하게 되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너무 좋은 사람인데 왜 확신이 들지 않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결국 나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 당시 영화토론과 독서토론을 함께 하던 동생이 있었다. 여덟 살 어린 대학생이었다. 까칠한 면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까칠한 말투 속에 촌철살인의 재미가 녹아있어 토론 멤버들이 좋아했다. 대화를 이어가려 2차, 3차까지 차를 마시며 자리를 옮긴 적도 왕왕 있었다. 영화 보고 이야기하고 책 읽고 수다 떨기를 몇 시간이고 지속할 만큼 대화가 잘 통했다.      


 그냥 재밌는 동생, 대화 잘 통하는 이모뻘 되는 누나로만 서로를 생각했었다. 아니, 생각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저녁 드라이브나 가자며 그 녀석이 집 앞에 찾아왔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도 자주 다니던 드라이브라서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달이 차오른 5월의 저녁, 꽃이 지고 꽃비가 내리는 작천정 벚꽃길 아래 차를 멈추고는 한참의 어색한 침묵을 뚫고 그 녀석이 말했다.      


“나, 누나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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