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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May 30. 2023

난 소심, 넌 무심

우리는 타인의 오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우리가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보여줄 때도 많다. 무책임한 짓을 저지르고는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며 억울해할 때도 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평가는 언제나 다르다. 그래서 신이 필요하다. 인간이 나를 오해해도 신은 나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다는 위로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 





"나도..."



'뭐라고? 너 남자 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어.' 

'아~ 이거 완전 환승연애잖아. 쌍욕 먹겠는걸.' 

'너 결혼 적령기야. 이 녀석은 대학생이라고.' 

이런 생각은 1도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대답부터 튀어나왔다.

'이게 뭔..'


구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확신이 들지 않았던 이유. 찾았다! 우습지만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단지 궁금했던 호기심. 그런데 '단지'가 아니었다. 내가 궁금했고 나를 궁금해했던 호기심이 서로의 끌림이 되었고 '사랑'이라는 확신이 되어 대답부터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사고가 정지되고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이런 비이성적인 인간 같으니. 삼성 팀장 대신 여덟 살 연하 대학생이라니. 


에라 모르겠다. 내 인생의 에움길이어도 좋다. 마음 가는 대로 해보자. 그렇게 시작했다. 






난 분명 사랑을 처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첫사랑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사랑은 없었다. 이것은 꿈인가 영화인가 드라마인가. 내 삶의 1분 1초가 '행복'이라는 단어로 충만하게 채워졌고 온 한울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기대 가운데 눈을 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싸이월드 비밀 게시판에 시가 한 편씩 올라와 있었다. 그 시를 읽어 내려가며 아침을 벅차게 시작했다. 


사계절 모두 꽃이 피는지 처음 알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자꾸 눈에 띄었다. 마치 눈에 다른 차원의 각막이 하나 덧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무 새싹이 저런 신록빛이었구나.'

'저 잔디꽃이 저기에 피었었나?'

'여름 하늘이 저렇게 높았다고?'

'빗방울이 이렇게 영롱했나?' 


길을 걷다가 만나는 작은 꽃 한 송이, 하늘에 흘러가는 뭉게구름 하나, 그날의 날씨마저도 재잘재잘 몇 시간의 대화거리가 되었다.  


거취를 고민하며 서울로의 이직을 생각하던 나는 이미 퇴사를 했고 백조가 되어 편의점 알바 중이었다. 아르바이트생과 대학생. 참으로 한숨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뭐가 좋은지 마냥 즐거웠다. 마음이 가득 차올라서 '행복'이란 단어는 이런 느낌이구나를 온몸으로 절감하는 하루하루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귀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여덟 살 연하를 꼬셔서 전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만들고 나랑 사귀게 되었다는. 여덟 살 연하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했다. 아마도 그 소문을 들었을 때의 내 얼굴은 흙빛이었으리라. 내 구남자 친구도 아니고 헤어진 지 몇 달은 된 상대의 전여자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신경은 쓰였다. 


내 안의 소심함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남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 게 아니라고. 난 남자친구가 있었고 너희 커플의 이별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만나서 해명을 해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내 주변 가까운 친구들 몇 명만 나의 구남친과 현남친의 러브 스토리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나를 해명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 역시 없었다.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있고, 진실을 아는 신이 있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우리가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 떠도는 말들은 잠잠해졌고 여덟 살 연상연하 만남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 들었다. 






때로 아주 소심해질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잘하고 인정받고 싶은 분야에 있어서는 더 그런 것 같다. 


나의 경우 글쓰기가 그렇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했던 일은 영화 보고 글 쓰고 책 읽고 글 쓰고 일기처럼 하루의 기록을 남겼던 일이었다. 가끔 에세이도 썼는데 내 글을 읽은 한 지인이 "네 글은 끝맺음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쉽게 내뱉은 평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나의 글쓰기를 중단시켰다. 소심해졌다. 완벽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완벽'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이던가. 스스로 만족한 글을 쓰기란 좀처럼 어려웠고 어딘가에 글을 올려 타인의 평가를 받는 건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 솔직하게는 남에게 평가받는 그 기분 더러운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지인이 물었다.


"요즘 왜 글이 안 올라와?" 

"그냥. 누가 내 글이 끝맺음이 없대서." 

"누가 그래? 어이없네 ~ "


헉. 나는 그 사람이 내뱉은 한마디 말에 오래도록 글쓰기를 멈추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다. 


조금씩 글쓰기를 시작했다. 여전히 끝맺음이 없을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중구난방일 수 있지만 계속해서 쓰겠다는 한 가지 다짐만은 이제 쉬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끝맺음이 없으면 좀 어떤가. 글의 여백을 통해 그걸 읽는 독자가 나름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성찰하게 되는 글쓰기면 더 좋은 것 아닌가. 








난 때로 소심하고 타인은 줄곧 나에게 무심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마음이 가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해보기.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다. 하나하나 대응하거나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설사 맹렬한 비판 앞에 서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비판했던 그 사람들조차 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고 마니까. 나의 선택에 내가 책임지며 살아가면 되니까. 



난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나도.."라고 답할 것이다. 

여전히 계속해서 나만의 글도 쓸 거고. 



아, 그래서. 지금 남편이 그때 그 여덟 살 연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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