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지금까지 마음을 잘 다스린 사람을 현자나 군자라 했고 마음을 함부로 쓴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거나 소인배라고 했다. 마음은 억지로 다스리려고 하면 저항하기 마련이다. 마음의 형체를 만들지 말고 고요히 바라보라. 그러면 얽히고설킨 마음의 형체가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된다.
바라볼 수 있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 하루 사용 설명서 -
사고가 정지됐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연인처럼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딱 1년만 살다 나오고 싶었다. 경기도에 기쁨의 집이라는 복지시설이 있다고 했다. 속세를 등지고 들어가 컵, 쟁반, 책꽂이 등 소품을 만들며 함께 먹고 자는 공동체 공간이라고 했다. 그곳으로 들어갈까도 잠시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장의 월세를 위해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천근만근 피곤에 절어 있는 몸을 일으켜 회사로 출근해야만 했다. 죽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밥을 욱여넣었다. 야근이 없는 날에는 집에 와서 저녁도 먹지 않고 내리 잠만 잤다.
영혼 없는 좀비처럼 껍데기뿐인 몸을 움직여 이리저리 바쁘게 이동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뒤로한 채 일에만 몰두했다.
몸은 바삐 움직이는데 왜인지 내 몸이 자꾸만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내가 땅 속으로 꺼져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겉으로 보이는 매일의 일상은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이러다가 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일단 멈춰야 했다. 난 마음이 아프면 몸까지 아픈 사람인데 마음도 만신창이인 데다 체력까지 바닥나 있었다. 몸이 두 배로 쇠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려면 잠시 멈추고 쉼을 가져야 했다.
일주일의 휴가를 얻어 태국으로 향했다.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 도착했는데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은 싫어. 네가 아니면 싫어. nobody nobody but you"
'젠장. 잊으려고 왔는데 이 노래는 뭐냐? 노바디 가사가 이렇게 절절한 내용이었던가?'
데스크 직원이 한국사람이냐며 자신은 원더걸스를 좋아한다고 이 노래 좋지 않냐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낯꽃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표정과 복잡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TCDC(태국 창조디자인 센터), 카오산 로드, 방콕 호텔 주변의 골목 이곳저곳을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예쁜 카페를 만나면 앉아서 차를 마시고 글을 쓰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4박 5일의 일정동안 매일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어느 날 왕궁을 걷다가 한 외국인을 발견했다. 거대한 왕궁의 흙길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유심히 지도를 살펴보는 한 사람. 노란 티를 입고 검은 레게머리를 질끈 묶은 검은 피부의 그 외국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아! 길을 잃었을 땐 일단 멈춰 서서 지도를 봐야 하는구나.'
길을 잃었을 때는 무작정 걸으면 안 된다. 일단 멈춰 서서 지도를 봐야 한다. 현재 나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해야 한다.
목적지가 멀고 험할 때는 휴식을 취하고 충전을 한 후 다시 출발해야 한다.
여행에서의 깨달음 이후 나는 줄곧 나의 현재 위치가 어디일까를 고민하고 출발지점부터 지나온 길을 복기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오래도록 생각했다. 처음엔 내 마음을 보는 것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음이 자꾸만 도망을 쳤다. 도망치는 마음을 붙잡아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 숙제였다.
동굴 속에서 몇 주의 시간을 더 보냈다. 그러다 원래 목적지를 기억해 냈다. 목적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적잖이 놀랐다.
시작은 그럴듯했다. '함께 선교사가 돼서 세계를 누비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자.'는 비전으로 함께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비전 따위는 사라지고 욕심만 남았다. 비전은 온 데 간데 없이 결혼이 목표가 되어 버리고, 집착과 이기적인 마음이 쌓여 내가 신이 되어 버렸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상대를 어찌하지 못해 화가 나고 서운함과 불평만 가득 쌓였다. '내'가 우선이 되고 '나'만 남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만 남은 관계에 우리는 없었고 그렇게 관계는 이미 깨어져 버렸다.
말 그대로 진짜 엉망이었다.
나의 잘못과 상대의 사랑이 그제야 보였다.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난 조금도 기다리지 못했다. 믿음도 사랑도 없었던 거다. 뒤늦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는 목적지도 잃고 함께 걸을 동반자도 잃은 채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욕심만 가득 품은 채 목적지도, 출발선까지 돌아오는 길도 잃은 채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아주 작은 빛이 보였다. 동굴은 마침내 터널이 되었다.
그거 아는가. 터널은 목적지까지 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걸.
동굴이 터널이 되기까지 멈춰서 생각해야 나의 지난 연애가, 그 시간들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는다. 바닥까지 생각해서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연애를 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혼자일 때의 나는 무엇을 했는지, 함께 할 때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끝까지 알아내야 한다.
이별 후에도 복기해야 한다. 그 사람은 어땠는지, 나는 어땠는지. 복기 후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거나 천하의 못된 놈이었다는 결론이 나면 거기서 끝내야 한다. 하지만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 때문이었다면 나의 부족함을 조금 더 채우고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멈춰 있지 않고 그렇게 성장하면 되는 것이다.
절절한 사랑과 잔인한 이별을 통해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두 번째 이별은 나를 성장시켰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 어떤 성장보다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그때의 이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한 이별을 함께 했던 그 친구와, 포기하기 않고 끝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결론 내린 그때의 나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절절한 아픔을 겪으며 원망하는 딸 곁에서 묵묵히 함께하며 끝내는 깨달음을 주셨던 나의 신에게도.
이후 일에 미쳐 살았다. 직장동료와 함께 피티도 받으며 건강 회복을 위해서도 힘썼다. 여행을 가려고 구메구메 모아두었던 돈으로 1년 치 피티를 끊었다. 일주일에 3일 저녁은 야근 3일 저녁은 운동을 할 만큼 회사-헬스장, 회사-집만 왕복하며 살았다.
몸과 마음은 회복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조금씩 찾아간 대신 연애는 포기했다. 서른셋에 온 미래를 걸었던 관계가 끊어지니 단 1%의 기대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 이상의 사랑은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