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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07. 2023

국영수 대신 사랑과 이별

매일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

- 스페인 속담 - 






 아, 그래서. 지금 남편이 그때 그 여덟 살 연하냐고? 

 에이. 그럴 리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던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었다. 첫 번째 연애는 아니었지만 첫사랑과 같았던 연애의 시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삼성 팀장과의 결혼을 마다하고 회사도 그만둔 딸이 울산에서 왜 올라오지 않는지 다그치시던 부모님은 딸의 기가 찬 연애를 알게 되셨다. 철없는 딸의 어이없는 연애를 뜯어말리러 한달음에 울산으로 내려오셨다.      

 내 나이 서른 하고도 셋이 넘어가는 그 시기에 온 미래를 다 걸었던 선택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기가 차지도 어이없지도 않았다. 결코 철없는 객기도 아니었다. 우리는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부부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고 하나하나 실천하며 느루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믿음이 있는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부모님은 막상 자신의 딸이 그 길을 가고자 하니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좋은 사람이라고 한 번 만나보라고 말씀드렸지만 이미 백안시하며 말도 못 꺼내게 하셨다. 팽팽한 의견 대립에 부모님과 나는 서로 마음만 상한 채 연을 끊다시피 했다. 유달리 나와 띠앗이 깊었던 남동생도 이번만큼은 응원할 수 없다며 등을 돌렸다.    

 





 남자친구는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서울에 있는 신학대학교에 편입해 기숙사에 있었고, 나는 서울로 이주 후 취업해 친구와 자취를 시작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일상에서의 작은 만족은 힘이 강하다. 배움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나는 매일 새로운 배움에 눈을 떠가고 열심히 지식을 쌓아가는 남자친구에게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나의 삶이 고단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매일의 소확행 없는 삶은 금세 시들어갔다.     

  

 가족의 반대를 뚫고 굳건한 듯 보였던 사랑에, 평온한 듯 보였던 일상에 질투와 고단이 끼어들며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시련의 시작은 가족의 반대가 아니었다. 지금껏 살아왔던 내 삶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부모님의 너울 같은 반대가 시작되고 매번 나를 응원했던 남동생의 지지가 사라진 데다 일상에서의 만족감도 떨어지니 내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약속이 필요했다. 나는 에둘러 결혼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장도 없는 남자친구는 학교 졸업 후 조금 더 경제력을 갖추게 되고 나와 나의 지인들에게 조금 더 떳떳한 사람이 되었을 때 결혼하자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조급했고 불안했다. 나이가 더 들어가면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았고 ‘시간이 지나 부모님까지 등지고 선택한 이 사람에게 버려지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무렵 부모님은 결혼을 허락하려 하셨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대체로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이었지만 한 번 해야지 마음먹은 일은 기어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겠다 생각하셨단다.      


 남자친구와 나 서로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잦은 다툼이 결국은 큰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미 깨어진 그릇은 잘 붙여놓아도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고 다시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이해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해가 쌓이고, 서로를 바라보았던 따뜻한 눈빛 대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원망의 눈빛이 채워졌다. 자고로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안다. 서로를 보듬으며 상처를 감싸줬던 마음과 말들은 약점을 후벼 파는 화살과 칼로 변해 날아갔다. 상처가 될 말들만 골라 서로의 가슴에 가속을 더하며 비수를 꽂아댔다. 그렇게 관계는 무너졌고 결국은 헤어졌다.      






 부모님의 반대가 아니라 둘의 문제로 끝이 났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아니 거기까지였어야 했다.    


 내 나이 서른셋에 나의 온 미래를 걸고 선택한 사랑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그 좌절감이 나를 억눌렀다. 이별을 인정하지 못했다. ‘이대로 죽어버리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휴대폰을 꺼버려서 남자친구가 집으로 찾아오게 만들고, 계속 전화를 걸어서 집요하게 매달렸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그보다 더 구질구질할 수 없다.'였다. 한동안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다가 나와 헤어진 지 한 달 만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습관은 무섭다. 기다렸던 영화 개봉 날 늘 가던 영화관에 갔다. 하필. 


지금 생각하면 하필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함께 자주 갔었던 영화관에서 남자친구가 낯선 여자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영화관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펑펑 울다가 영화도 보지 못하고 돌아서며 이별을 인정했다.


       



 이별을 인정하고 나니 더 무기력해졌다. 당장 회사도 그만두고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연인처럼 숨어 살고 싶었다. 


 일상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매달 월세를 내려고 꾸역꾸역 출근했다. 


 그때 가장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이때 나 하나 먹고살기 위해 회사 가는 일도 이렇게 고역인데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세상의 모든 가장분들 존경하고 응원한다.     

 

 다시 돌아와서.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나의 연애는 왜 이렇게 끝이 났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너무 믿어서 뒤통수 맞았고, 두 번째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건지 곰곰이 곱씹어봤다.    




  

 

 이 나이 먹도록 왜 이렇게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지식도 정보도 전무할까. 학교 때 배웠던 국영수 따위는 이별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20년 가까이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는데 왜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걸까? 태생 처음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국영수 대신 ‘사랑과 이별’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앉아서 책 속의 이론만 가르칠 게 아니라 연애를 장려하고 갈등을 원활하게 해결하는 소통의 방법을 가르치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역경을 이겨내는 노하우를 전수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과과정의 문제 인지를 시작으로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2년 넘게 강렬한 햇볕으로 가득했던 나의 땅에 해가 잦아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잠시 멈추었다. 

 일시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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