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대생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공식을 배격한다. 새로운 세대는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인터넷상의 '직장 계명'에 동의하고, 이를 넘어서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찰스 핸디는 <코끼리와 벼룩>에서 오늘날의 충성심이란 것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것,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 <90년생이 온다>,
2018년 출간된 도서 <90년생이 온다>를 2020년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적이 있었다.
함께 독서모임을 했던 멤버는 네 명이었는데 네 명 모두 책을 읽고 난 느낌을 나누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저자가 1990년생들을 겪으며 이들에 대해 표현했던 세 가지 단어는 '간단, 병맛, 솔직함'이었는데 독서모임 멤버들이 2년여의 시간 동안 나를 겪고 나서 들었던 느낌이 딱 그 세 가지 단어에 부합한다고 했다.
사실 '간단, 병맛, 솔직함'은 콕 짚어 90년생이나 특정 세대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가깝다.
부모님, 친구들 심지어 남편까지 나를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 성향이라는 것이 한몫한다.
간단.
나는 스트레스를 오래 두지 않는 편이다. 물론 아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긴 하나 오래 담아두지 않으려 한다.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노력해 보고 안되면 말고. 정말 이상한 공동체 안에 어쩌다 속해서 더 있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으면 기한을 정해서 노력해 보고 안되면 떠나고.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싫어하면 되고, 이유가 있다면 들어보고 오해를 풀면 되고.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으면 깨지기도 하는 거고. 간단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게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기본 마인드이고 환경은 '흘러가는 대로'라고 생각하는 게 인생철학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뜻 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붙잡으면 마음만 상하기 일쑤인지라 조금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려 한다.
말 그대로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병맛.
이 부분은 정말 개인의 취향이라 생각하는데 어쩌다 보니 내 취향은 병맛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멜로가 체질>. 천만관객 영화 <극한직업>의 감독이자 각본을 쓴 이병헌 감독이 만든 드라마인데 일반적인 상식이나 익히 알고 있던 속담들을 비틀어버리는 묘미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 좀 해주면 안 돼요?"
"아니, 고래가 춤추는 걸 봐서 뭐 하게?"
드라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극 중 잘 나가는 신예 드라마 감독이 베테랑 작가의 작품을 까는 장면인데 베테랑 작가가 거절감의 굴욕을 이기지 못하고 충고 한마디 하겠다고 하자, 감독이 평안하게 눈을 감고 웃는다. 이내 양손을 양 귀에 가져가 뗐다 붙였다 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충고 안들어어어 ~~~ 충고 안 들어어!"
라고 말한다. 아, 통쾌해. 생각만 해도 신난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행동도 그렇게 한다. 결혼초기 어느 아운한 주말, 천장 보고 방바닥에 누워 팔다리 날갯짓을 하며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있겠다."
고 선언한 뒤 종일 바닥에 누워 엉덩이로 기어 다니던 나를 보며 남편이
"진짜 병맛의 캐릭터화야"
라며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인물 같다고 말했었다. <멜로가 체질>에서 딱 그 행동을 하는 주인공을 보고 남편이 외쳤었다.
"앗, 단비다!"
솔직함.
가벼운 솔직함은 단체로 밥 먹으러 갔을 때 먹고 싶은 메뉴를 거침없이 말한다거나, 친구가 머리를 자르고 와서 "이상해? 전에 머리가 더 나아?"라고 물어봤을 때 "조금"이라고 대답한다거나. 물론 상대 봐 가면서 한다.
사회나 문화가 만들어져서 의례히 그래왔던 관습들에 나는 늘 '왜?'라는 질문을 하고 살았다. 이해되지 않는 건 그냥 그래왔으니까 따르는 게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데? 왜 그래야 하지?"
라고 솔직히 묻는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서.
가만히 소파에 앉아 청소하는 엄마에게 물 가져다 달라는 아빠에게 "엄마 바쁘시니까 아빠가 가져다 드시라."라고 말하는 중학생 딸내미. 아빠는 여자인 네가 가져다 달라고 말씀하셨고 난 "거기에 왜 여자가 붙는 거죠? 요즘은 여자도 돈을 버는데 집안일을 왜 여자만 해야 해요?" 라며 장작 몇 시간 동안 남녀평등에 대한 토론을 했더랬다.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나는 아빠와 사이가 좋은 편이다. 둘이 같은 책을 읽고 독서토론도 하고 아빠와 단 둘이만 영화관 가서 영화 보고 저녁식사를 하며 데이트를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어디까지나 단순히 성향의 문제다.
<코끼리와 벼룩>이라는 책에서 찰스 핸디가 말한 충성심의 순서 '첫째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것,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독서모임 멤버들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났다는 이유 중에는 이전에 나눴던 직장생활 에피소드 속의 내 행동과 <90년생이 온다>라는 책 속에 소개되는 90년생들의 행동이 닮아있기 때문도 있었다.
워라밸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였기에 퇴근 후 회사에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업무시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거나 다음날 해결해도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업무량이 되우 많아 평일 야근을 자주 하게 되긴 했지만 갑자기 잡힌 회식이나 주말 초과근무는 가능하면 하지 않았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참석했던 회식자리에서 일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1%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부당하다고 생각한 일에는 컴플레인을 걸기도 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되겠구나를 몸소 체험한 결과였다. 써놓고 보니 이래서 승진이 늦었나 보다 싶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독서모임 멤버 중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90년 생이세요?"
90년생이 오기 전에 내가 이미 와 있었다.
<90년생이 온다>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 든 간에 기성세대와 조화를 이루어가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나는 기성세대의 절실한 노력뿐 아니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 기성세대, 90년생, 2000년 생의 세대를 나누는 노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나'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라고. '나'와 다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각기 다른 개인을 비슷한 나이의 세대로 나누고 특징을 묶기엔 우리는 너무 다르다. 친구와 같은 MBTI 유형이어도 시시각각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가 확연하게 다르고, MZ세대 MZ세대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있지만 사실 M과 Z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사회는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통계 내리고 특징짓고 통제하기 좋아한다. 통계 러버, 통제 러버인 이 사회에 우리 모두가 시나브로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세대를 나누는 특징이 이렇다더라.'에도 휩쓸리지도 말고
그냥 '나'로 '오늘'을 자유롭게 살아보자.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내'가 바로 이 세대를 대표하는 단 한 사람이니까.
*아운하다: 몸이 지치고 힘이 없어 나른하다.
*되우: 아주 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