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
- '함무라비 법전' 귀퉁이의 낙서 -
오래전부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있는데 바로 나이를 묻고, 나이로 세대를 나누는 문화이다. 처음 만나서 민감할 수 있는 개인정보인 나이를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이름과 나이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그 소중한 정보를 서슴없이 묻고 답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면 바로 언니, 오빠, 형을 부르는 문화. 어렸을 때부터 좀처럼 적응이 안 되고 늘 "왜?"라는 의문이 들었던 문화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난 이런 언니동생 문화를 싫어한다. 나이를 말함과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랬다.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겪어보고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노력 대신 나이로 인한 프레임을 너무 쉽고도 강력하게 씌워버리는 경향이 있어서다.
언니동생이라 칭하지만 않을 뿐 사실 나이에 따른 이 프레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있어왔다.
BC 1750년 경의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이 발견된 당시 법전의 귀퉁이에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요즘 젊은 것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겠다.
'요즘 젊은것들'을 나누는 통계들은 무수히 많다. 내가 겪었던 명칭만 해도 몇 가지나 된다. X세대, 오렌지족, Y세대, 밀레니엄세대, MZ세대까지.
각각을 설명하는 대강의 정의는 이렇다.
X세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이 끝난 뒤에 태어난 세대. 보통 1965년생부터 1980년생까지를 말함.
오렌지족: 1970 ~ 80년대 경제적 혜택을 받고 태어나 주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에서 자유롭고 호화스러운 소비생활을 즐긴 20대 청년을 지칭.
Y세대: 1980 ~ 1994년 사이에 태어나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경험한 세대.
밀레니엄 세대: 1991년 출간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말하며 청소년 시절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모바일, SNS 등 IT에 능통.
MZ세대: 1980년대 초 ~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임.
1980년생들은 엄청 바쁘다. X세대부터 MZ세대까지 속하지 않는 세대가 없다. 하지만 과연 모든 1980년생이 IT에 능통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일까? MZ세대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라고 해서 IT에 능통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안다.
나이로는 MZ세대에 속하지만 누구보다 유교적이고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옳다고 굳건하게 믿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명 '젊은 꼰대'도 많이 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처음부터 한 회사에 들어가 승진하며 회사의 중간직급으로 승진한 친구들에게 이런 경향이 많이 보인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공동체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하나의 세계에서만 오랜 시간 머무른 이들, 특히 그곳에서 인정받으며 오랜 시간을 머무른 이들은 그 세계의 방식이 진리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거나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다. 물론 한 회사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승승장구했더라도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호박한 아량을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네 곳의 직장을 다니며 겪었던 젊은 꼰대들은 하나같이 첫 직장에서 10년 이상 머물며 회사의 중역으로 성장한 이들이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환경에만 오래도록 머무르면 자신을 객관화하게 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이리저리 회사를 옮겨다니라는 말은 아니다.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지위나 감투를 내려놓고 새로운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가정, 동아리, 여행지 등등.
다양한 공동체와 다채로운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라고들 한다. 아마도 새로운 세계, 나와 다른 다양한 생각과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을 접하며 보다 넓은 시각으로 많은 것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매주 화요일 오전 우쿠렐레를 배우러 동네 복지관에 가는데 우쿨렐레 반 최고령자는 여든 살이 넘으신 여자분이다. 그분은 우쿨렐레뿐 아니라 기타와 오카리나도 배우러 다니신다. 친구들이 경로당에 오라고 해서 놀러 갔는데 신문하나, 잡지 하나가 없더라며 배울 것이 없어서 그다음부터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며 낡아지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하셨다. 우쿨렐레 반에서 배우는 리듬이나 코드를 잘 모르시면 주저하거나 창피해하거나 아는 척하지 않고 물어보신다. 게다가 결석은커녕 지각 한 번 하지 않으신 성실함까지 탑재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그 어떤 MZ세대보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며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분이시다. 우쿨렐레 반 막내인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강사님에게 악기 연주뿐 아니라 멤버들에게 배움의 열정, 성실함, 겸손까지 배운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계장님 한 분은 1981년생이다. 지금은 이직을 했는데 이직한 회사에서 'MZ모임 동호회'에 들었다며 좋아했다. 제일 맏형으로 주말에 함께 놀러도 가고 회식도 하는 그 모임이 즐겁고 신난다고 했다. 아마 그 계장님은 X세대 모임의 막내로 참가했어도 신나했을 사람이지만 'MZ'모임에 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자신이 핫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 넘의 MZ가 뭔지.
1979년생이라 MZ세대에도 끼지 못하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는 친구도 있고, 반면 MZ세대라 하면 새로운 문화를 다 받아들여야 할 것 같고 에너지 넘쳐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은 전혀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며 '왜 난 가만히 있는데 MZ세대로 묶어서 특징짓느냐.'는 2000년생 친구도 있다.
세대마다 향유하는 문화는 다르고 그 문화를 추억하며 나누게 되는 공감대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누구의 의지도 아닌 단지 생년을 가지고 매번 그룹을 나누는 것. 이제는 식상하다.
나이와 세대를 떠나 누구나 한계 없이 뭐든지 할 수 있고 태어난 이상 현존하는 모든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을 좋아하거나 받아들이는 건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구분 짓고 그룹 지어 명명하기 좋아하는 사회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자. 그 프레임에 나를 구겨 넣으려 하지도 말자.
MZ 따위 개나 줘 버려라.
호박하다: 크고 넓다.